[베이비 부머 '생계형 창업'의 덫] (上) 한창 일 할 나이에 은퇴…"일단 가게부터 열자" 대부분 실패
지난해 5월 A대기업에서 정년 퇴직한 권인구씨(56)는 재취업이 힘들다고 판단,창업하기로 결심했다. 사업 아이템과 입지를 고르기 위해 골몰하던 권씨는 석 달 뒤 경기도 용인시 단국대 정문 부근에 프랜차이즈 중국 음식점을 열었다. 권씨는 아내를 설득,주방 보조일을 맡기고 자신은 카운터를 맡았다. 창업 자금은 보증금 5000만원과 시설비 5000만원 등 총 1억원.

막상 가게를 열고 보니 뜻밖의 복병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우선 식재료비가 매출 대비 50%를 넘었다. 수요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다. 인력 관리는 더 큰 난관이었다. 주방장이 갑자기 결근하면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방학을 고려하지 않은 건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9~11월까지 70만~100만원 선을 오르내리던 하루 매출이 겨울방학이 되자 30만원으로 곤두박질쳤다. 권씨는 요즘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매출 부진도 문제지만 가정이 깨질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오전 10시에 가게에 도착,다음 날 새벽 1시에 귀가하면서 권씨 부부는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부부싸움도 잦아졌다.

직장을 그만둔 '베이비 부머'들이 '생계형' 창업 시장에 줄줄이 뛰어들고 있지만,참담한 실패를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산업 주력부대에서 활약하던 이들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곧바로 낙오자로 전락하는 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전문가들은 창업교육을 강화하고 재취업 프로그램을 입체적으로 가동해 베이비 부머들이 '세컨드 라이프'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길거리 창업 내모는 사회

[베이비 부머 '생계형 창업'의 덫] (上) 한창 일 할 나이에 은퇴…"일단 가게부터 열자" 대부분 실패
삼성경제연구소가 분석한 베이비 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는 작년 말 기준 713만여명.1955년생이 작년에 기업들의 평균 정년퇴직 연령(만 55세)에 도달하면서 현업에서 은퇴하기 시작했다고 가정하면 단순 계산으로도 향후 9년간 매년 79만명가량이 '직장'이란 울타리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 중 상당수가 창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퇴직 후 재취업하는 사례가 아직까지 미미한 수준이어서,은퇴 이후 일을 하고 싶은 베이비 부머들이 창업 시장으로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준비된 창업자들은 극소수여서 십중팔구 1년 안에 실패하기 십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자영업자 수가 너무 많아서다. 포화상태란 얘기다. 최재희 한경자영업지원단장은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2009년 말 현재 487만명으로 경제활동인구의 20%를 넘는데 이는 선진국의 2배 수준"이라며 "샐러리맨에서 자영업자로 변신한 사람들 중 24%가 음식점,호프집 같은 생활밀접 업종을 선택하므로 한정된 업종에서 극심한 경쟁이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준비 안된 창업이 실패 부른다

실패를 부르는 첫 번째 요인은 '준비 안된 창업' 탓이다. 직장을 그만둔 뒤 조급한 마음에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몇 군데를 둘러보고 점포부터 구해놓는 창업자들이 부지기수다. 퇴직 연령이 낮아지다보니 자녀교육비 등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무작정 창업'을 재촉한다. 가맹점 창업엔 여러 가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최재봉 연합창업컨설팅 소장은 "주류회사 임원을 지낸 상담자 한 분은 본사 말만 듣고 '1020상권'인 서울 관철동에 육회전문점을 차린 뒤 3개월 만에 폐업한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성급한 창업은 실패를 부르는 지름길이다.

◆베이비 부머의 빈곤층 추락은 사회문제

베이비 부머의 창업 실패가 심각한 것은 자칫 실패하면 재도전의 기회를 얻기가 힘들다는 데 있다. 현재 베이비 부머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6%.50대의 3분의 1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창업시장에서 밀려난 베이비 부머들이 재기를 모색할 기회는 거의 없다. 더군다나 노후 준비를 국민연금 하나에 의존한다는 베이비 부머들이 대부분이어서 이들이 창업시장에 밀려들면 밀려들수록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규철 세종사이버대 유통물류학과장은 "베이비 부머들이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가 건실한 프랜차이즈 업체들을 집중 육성해 창업시장에서 밀려난 베이비 부머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