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의 변방으로 여겨졌던 투자자문사들이 증시의 핵심 주체로 떠올랐다. "코스피지수 2000시대는 자문사들이 열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자문사들의 영향력은 막강한 자금력에서 나온다. 증시 과열 논란 속에서도 고수익이 기대되는 자문형 랩으로 연일 신규 자금이 들어와 외국인과 기관의 수급 공백을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문사들의 지난해 성적표는 투자자들의 기대와 달리 초라했다. 7공주로 '반짝' 대박을 친 상반기를 제외하곤 시장수익률을 조금 웃돌거나 오히려 뒤처졌다.

◆12월 코스피 이긴 곳은 한 곳뿐

23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이 기관투자가에 제공한 주요 자문사의 일임형 계좌 수익률 현황에 따르면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돌파하고 연말 랠리를 이어간 지난달 32개 자문사 중 레오투자자문만이 9.0%의 수익률로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7.6%)을 웃도는 성과를 냈다. 32개 자문사의 평균 수익률은 4.9%로,국내 주식형펀드 수익률(8.01%)에도 3%포인트 가까이 뒤졌다.

지난해 수익률 1위를 차지한 케이원은 2.4%,브레인은 3.7%에 그쳤다. 가파른 상승장에서 빠른 순환매가 돌아 소수 종목에 투자하는 자문사들이 펀드보다도 성과가 부진했던 것이다.

3개월 수익률을 보면 32곳 중 21곳이 코스피지수 상승률(9.5%)을 넘어섰다. 이 기간 자문사의 평균 수익률은 10.6%로 국내 주식형펀드 평균치(10.37%)와 성과가 비슷했다.

기간을 1년으로 늘려서야 24개 자문사 중 21개사가 코스피지수 상승률(21.8%)을 넘어섰고 평균치도 25.9%로 국내주식형 펀드(20.7%)를 앞섰다. 그나마도 지수 상승률의 2배 정도 '대박' 수익을 낸 자문사는 케이원(48.5%)과 파레토(45.7%) 정도였다. 배성진 현대증권 연구위원은 "포트폴리오의 종목 수가 적으면 분산효과가 줄어 리스크가 커진다"며 "종목 선택능력에 따라 수익률 편차가 심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경향은 기간이 짧을수록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테마주 실종…자문사들 고전 중

지난해 돈이 구름처럼 몰린 자문사들이 결과적으로 부진한 성과를 낸 것은 '7공주' 이후 이렇다 할 자문사 테마주가 만들어지지 못한 영향이 크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자문사들이 공동 발굴한 7공주가 단기간 급등하면서 이들 종목에 올라탄 자문형 랩은 한 달 새 두 자릿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7공주가 주춤한 뒤에는 자문사 간 선호주가 갈리면서 단기간 수급의 힘으로 '스타주'를 탄생시키기 어려워졌다. 실제로 최근 브레인의 최선호주(톱픽)는 자동차,케이원은 화학,한국창의투자자문은 금융주로 서로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자문사 대표는 "지난해 브레인과 케이원 간 겹치는 선호 종목이 '7공주'를 만들어 낸 뒤 추격매매가 붙어 삽시간에 급등했지만 요즘에는 자문사마다 치열하게 각개전투를 벌이면서 테마주라고 할 만한 게 아예 사라졌다"고 귀띔했다. 때문에 최근 상승장에서도 자동차 · 정보기술(IT) 등 업종 순환매가 빠르게 나타나 수익률이 부진한 자문사들이 많아졌다.

대형 증권사 강남지점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지난해 6월까지 자문형 랩에 가입했던 고객들은 거의 대박이 났지만 10~12월 사이 가입한 고객들은 대부분 손실을 보다가 그나마 요즘 조금 회복했다"며 "가장 잘 한다는 브레인도 지난달 손실을 내다가 이달 초 자동차주가 급등해 수익을 다시 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 종목장세가 펼쳐지면 소수 자문사만 성과를 낼 것이기 때문에 최근 고객들에게 자문형 랩보다 좀 더 방어적인 펀드나 금융공학펀드를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