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들은 새해 첫 지면을 통해 올 한 해 정치판도를 예견했다. 국정의 우선순위,대통령선거의 유력 주자들,개헌문제,남북관계 등에 관한 기사들을 실었다. 작년 말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예산안 통과 후유증이 여전한 가운데 인사청문회,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 등 연초에 당면한 문제들을 볼 때 올해 정치권의 갈등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올해도 국민들은 변하지 않는 정치권 때문에 이마를 찌푸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암울하다.

국민이 원하는 제대로 된 정치가 무엇인지를 규정해보자.국회에서 사회 변화에 조응하는 법률 제정 및 개정이 이뤄지고,행정부는 이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며,이를 국회가 감시하고 시민사회가 모니터링하는 구조가 정상적 정치의 기본 골격이다. 사안에 따라 행정부가 정책변화를 주도하기도 하고,때론 시민사회에서 정책요구가 제기되고 이를 국회가 수용하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

문제는 각 정치영역이 이 같은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을 위축시키거나 계도하려 해서는 안된다. 현 정부 들어 시민사회가 위축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권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사회 각 분야에 대해 권한을 확대하고 국회에 대한 간섭이 늘어날까 우려된다. 개헌논의 중에 분권형 대통령제가 등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인데,현 정부는 이런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것 같지 않다.

국회의 파행과 공전은 일상화돼 버렸다. 에둘러 말할 것 없이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합의가 없는 것이 근본적 문제다. 정당들이 타협의 기술을 발휘할 능력이 없다면 다수결 방식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국회의 주도권을 갖는 동시에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소수당은 선거에서 패했기 때문에 국회에서 의사결정권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수용해야 한다. 소수당이 할 수 있는 방안은 여론을 설득하거나 다수의 소수정당들이 연합해 다수당을 압박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패한 소수의석의 정당이 세력의 불균형에 놓이는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국회 내 몸싸움을 대의를 위한 숭고한 저항이라고 생각하는 피학적 정치의식이 작동하는 한 국회의 정상화는 요원하다. 폭력 국회에서 앞장서는 것이 당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이고,부상 당하거나 고발되는 것을 훈장쯤으로 여기고 정당지도부의 격려와 지원이 전리품으로 주어지는 관습이 지속되는 한 어떠한 제도 개선도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국회가 엉망이 돼도 정당들이 정치적 부담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껏해야 상대 정당을 맹비난하는 정도에 그칠 뿐 국민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

올해 선거가 없다는 것이 정치의 일상화를 가져오기는커녕 내년 총선과 대선을 대비한 눈치보기와 줄서기의 극치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주요 정치 지도자들의 세 불리기 전략에 따라 정치인들이 이합집산을 하기 시작한다면,국민과 유리된 그들만의 정치리그로 또 다시 1년을 허송할 따름이다.

새해에는 적극적 시민의식이 정치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돼야 한다. 다수의 시민단체에 의한 정치 감시와 평가가 이뤄지고,정치권이 이에 대한 부담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법적으로 정해진 권한을 침해하거나 규정을 지키지 않는 행위들이 우선적인 평가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권력이란 원래 자기통제와 절제가 어렵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종국적 수단은 시민의식과 행동일 수밖에 없다. 정치구도의 주요 변인으로 깨어있는 시민감시가 포함돼야 예견되는 정치의 정체현상을 막을 수 있다.

이현우 < 서강대 교수·정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