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권 지각변동] (1) '女의 명동' 원스톱 쇼핑의 명소…'男의 강남역' 유흥ㆍ음식점 강세
서울 명동의 중앙로.지난 10일 오후 5시께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우리은행 방향으로 학교 수업을 마친 여고생들이 인파에 휩쓸려 갔다. 이들은 아디다스와 후부 매장을 둘러본 뒤 값싼 액세서리 가게가 몰려 있는 1번가로 발길을 돌렸다. 중앙로 더페이스샵에는 중국인 관광객 10여명이 쇼핑백에 화장품을 통째로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같은 날 오후 10시30분 강남역 금강제화 이면도로변의 가게들도 술 손님들로 앉을 자리가 없었다. 회사원 김창준씨(35)는 "요즘은 수능이 끝난 뒤여서 가는 곳마다 학생들로 만원"이라며 "할 수 없이 교보타워 쪽까지 올라가 고깃집에서 술 한잔하고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부활의 노래' 명동상권

명동과 강남역이 대한민국 상권 1번지 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루고 있다. 이들 두 상권은 자타가 공인하는 황금상권.명동이 1960년대 이래 승승장구해온 전통 상권이라면 강남역은 강남이 본격적인 개발 붐을 탄 1980년대 이후 자리잡은 후발 주자다.

상권의 양대 축을 이루는 소비자와 상인들의 만족도,매출수준,점포시세 등을 비교해 보면 명동이 강남역을 다소 앞선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명동상권은 패션과 먹을거리가 공존하는 데다 백화점을 끼고 있어 손님을 끌어모으는 집객력에서 강남역을 능가한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명동을 업그레이드한 기폭제는 외국인 관광객과 유니클로 자라 H&M 등의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들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힘을 잃어가던 명동을 살찌우는 젖줄이 됐다. 더페이스샵 명동2호점의 김종석 매니저는 "중국인 관광객을 중심으로 외국인이 고객의 70%를 차지한다"며 "조선족과 중국인 유학생을 '알바생'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음식점에도 외국인 발길이 잦다. 안동찜닭 식당을 운영하는 K씨는 "30평짜리 매장에서 하루 평균 6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데,이 중 절반은 외국인이 올려준다"고 말했다.

이동희 명동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은 "외국인들이 단체 또는 2~3명씩 짝을 지어 패션이나 뷰티 매장을 찾는 바람에 화장품 업체들이 너도나도 매장을 냈다"며 "3년 전 27개였던 매장 수가 지금은 67개로 늘어났다"고 소개했다.

◆명동은 여성,강남역은 남성

명동 중앙로에서 만난 나미경씨(27 · 여)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명동에 오는데 주로 쇼핑을 한 뒤 밥도 먹고 술도 마신다"며 "명동 주변에는 백화점들이 있어 원스톱 쇼핑하기가 좋다"고 말했다. 1주일에 3~4회 들르는 명동 마니아도 많다. 친구사이인 김은영씨(28)와 강지선씨(28)는 "친구들과 만남의 장소는 항상 명동"이라며 "쇼핑하고 커피 마시고 영화 보는 일이 모두 해결된다"고 전했다. 이들이 주로 옷을 사는 장소는 스페인의 SPA 브랜드인 '자라' 매장.디자인이 다양하고 부담 없는 스타일인 데다 가격도 합리적이어서 자주 찾는다고 한다.

강남역 상권의 주류는 먹을거리다. 음식점과 주점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로변에 패션이나 뷰티 가게가 속속 들어오고 있지만 아직은 비주류다. 이 때문에 강남역 마니아 중에는 유난히 남성들이 많다. 사무실이 역삼동에 있는 회사원 강영현씨(32)도 "친구와 만날 때나 데이트 장소를 강남역으로 잡는 것은 밥 먹고 술 마실 장소가 가격대나 취향별로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용인 죽전에 사는 이유나씨(23)는 "학원에 다니려고 매일 강남역에 오긴 하지만 번잡한 데다 '삐끼'들까지 설쳐 이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패션 성격이 강한 명동을 여성이 주도한다면 강남역은 남성 색깔이 진한 유흥 · 오피스 상권인 셈이다. A화장품 업체의 하루 평균 매출도 명동에선 1733만원에 이르는 데 비해 강남역에선 300만원에 그친다. 반면 B외식업체와 C편의점의 하루 평균 매출은 명동(300만~353만원)보다 강남역(400만~412만원)이 더 많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