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의 부산구포지점 직원이 3년6개월여에 걸쳐 79억원을 횡령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는 단 하루만이라도 지점 내 현금잔액과 서류를 대조해 보면 막을 수 있었던 것이어서 농협의 내부 관리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18일부터 농협에 대한 검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10일 금감원과 금융계에 따르면 농협 구포지점의 한 창구직원은 2007년부터 최근까지 3년6개월에 걸쳐 총 79억원을 횡령해 개인용도로 사용하다 적발됐다. 이 직원은 고객에게 받은 타점권(다른 은행이 발행한 수표)을 입금할 때 금액을 부풀리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예컨대 다른 은행 수표 10만원을 받으면 1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서류에 기재한 뒤 90만원을 자신이 횡령하는 방법을 사용해 돈을 횡령해 왔다고 농협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직원은 이런 식으로 2007년부터 최근까지 돈을 횡령했다. 영업일 기준으로 하루 평균 928만원을 착복해온 셈이다.

금융계에서는 이런 수법으로 79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횡령한 것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은행들은 타점권을 매일 수표 발행 은행과 교환해야 하므로 타점권 및 현금을 확인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타점권 잔액과 서류상 잔액이 일치하지 않으면 타점권을 교환하기 전에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다는 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또 하루 이틀 정도는 모르고 넘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3년 넘게 같은 수법으로 돈을 횡령해 왔는데도 농협이 알지 못했다는 것은 정상적인 은행에서는 도저히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 관계자는 "타점권 시재는 매일매일 점검하도록 돼 있는데도 3년 넘게 이를 몰랐다는 것은 내부 직원들이 공모하지 않으면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농협의 내부감사 시스템이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음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지적이다.

농협은 이에 대해 "이 직원은 4년가량 구포지점에 근무했으며 횡령사고를 적발한 뒤 곧바로 대기발령조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공모자는 찾지 못했으며내부관리시스템도 별 문제가 없다고 밝혀 이번 사고를 개인의 비리로 치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79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어떻게 타점권 부풀리기 방식으로 횡령할 수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18일부터 농협에 대한 검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발생한 농협의 사고금액은 2008년 이후 농협에서 발생한 전체 금융사고 금액(101억4900만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농협중앙회는 최근 황영철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2008년 19건,2009년 15건,올해 5월까지 7건 등 41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사고금액은 모두 101억4900만원이다. 이 중 44%인 18건(89억8700만원)이 내부 직원들의 횡령사건이었다. 농협은 43억8200만원을 회수가 어렵다고 보고 손실로 처리했다.

농협은 2005년 이후 지난해까지 5년간 성과금과 특별성과금 명목으로 1조8513억원을 임직원들에게 지급하는 등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것으로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았다.

하영춘/강동균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