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들은 기를 쓰고 장사를 한다. 사무실 밀집 지역은 경쟁이 더 치열하다. 승패는 언제나 갈라진다. 오늘도 한 집이 문을 닫고 주인은 55만명에 달하는 자영업 폐업자 명단에 55만1번째로 또 이름을 올린다. 304만4169개 중소기업 명단에서도 1개가 줄어든다. 바로 이때 자애로운 새 구청장이 영업이 어려운 식당에 그릇당 1000원씩의 보조금을 주기로 한다. 그랬더니…? 얼마 후엔 잘 굴러가던 식당까지 더불어 빈사상태가 된다. 결국 구청장은 모든 식당을 살리는 '특단의 해결책'을 구상한다. 식당 주인들을 모아 공정가격을 정하고 식당별로 손님의 수도 정해준다. 손님들이 싸고 맛있는 집을 찾는 잔인한,갑(甲)의 횡포는 엄중하게 금지된다. 드디어 경쟁은 사라지고 식당은 비로소 인간답게(?) 장사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식자재 가격이 급등한 것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른다. 그렇다, 문제는 언제나 원가였다! 구청장은 직원들과 연일 심야 대책회의를 거듭한 끝에 배추 무 등에도 공정가격을 적용하고 엄정한 구매 납품 규칙을 제정한다. 납품가격을 후려쳐온 대형 식당에는 구매단가를 올리도록 엄중히 명령하고 썩은 동태든 싱싱한 생태든 같은 가격에 사들일 것을 역시 엄중하게 지시한다.

엄중하게 명령할 일은 이렇게 점점 많아진다. 검찰은 반발하는 업자들의 약점을 잡아 대드는 놈은 혼내준다. 그런데 아뿔싸! 이제는 농민들이 들고일어난다. 땀 흘려 농사 지어 식당과 중간상만 먹여살릴 수는 없닷! 광화문에서는 연일 데모가 터진다. 이번에는 고뇌에 찬 표정으로 중앙정부가 나서 농산물 생산비 보상제도를 만들어 낸다. 가뜩이나 낮은 농업 생산성은 더욱 낮아진다. 아무도 농사를 대형화하지도,신품종을 생산하지도 않는다. 오직 보조금이 나오는 품종에만 늙도록 매달린다. 농민들은 반대하는 인물은 아예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지 않는다. 정치인도 어쩔 수가 없다.

눈치만 보던 다른 집단들도 "우리를 먹여살려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한다. 선거에서는 "학교 밥은 공짜로!"를 구호로 내건 정당이 재미를 본다. 정치인은 누가 더 잘 퍼주는지를 본격적으로 경쟁한다. 그럴수록 정부는 더욱 바빠진다. 비상경제대책회의는 결코 해체될 줄을 모른다. 시장경쟁이 사라지면서 정치경쟁은 이렇게 본격화한다.

장사꾼들을 지도 편달하느라 공무원들의 완장 찬 어깨에는 힘이 더 들어간다. 이 민주화 시대에 이건 또 웬 말이냐! 이번에는 이것도 잡아야 한다. 공무원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이 실시된다. 만인이 만인에 대해 열을 받고 뚜껑이 열리기 시작한다. 금융 문제는 더 심각하다. 돈은 생명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금융 이용은 곧 국민의 기본권'으로 엄중히 선언된다. 서민들에게는 햇볕정책 비슷한 이름의 햇살론, 웃으면서 빌려가라는 미소금융 등 소위 묻지마 대출이 제공된다. 햇볕이건 햇살이건 위선적 행위에는 언제나 이런 아름다운 이름이 붙는다. 정말 징그럽다. 그러나 바보들은 이름이 좋으면 내용도 좋다고 생각한다. 돈을 못 갚아도 어쩔 수 없다. 돈 떼이면 정부가 대신 갚아주겠다는데 그래도 분담금이나 갹출금을 안 내는 금융사와 기업들이 있다. 이들은 매를 맞는다.

이번에는 등록금이 없어 대학을 못 다니는 일도 있을 수 없다고 엄중히 선언된다. 학자금은 전액 대출된다. 혹 철없는 대학들이 등록금을 올릴지 모르니 등록금 상한제를 실시한다. 정말 정부는 바쁘게 돌아간다. 이렇게 해서 1류나 3류나 대학 등록금이 같아진다. 나중에는 1류 기업이나 3류 기업이나 월급이 같아진다. 같은 등록금 내고 다녔는데 기업별 급여 차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역시 엄중하게 선언된다. 밤이 되자 서울광장에서는 백수들의 취업 동등권 데모가 시작된다. 그래, 모든 것이 권리이고 야간 시위도 활짝 허용된 터다. 그렇게 바보공화국의 바쁜 하루는 저물어 간다.

정규재 논설위원 겸 경제교육硏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