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으뜸기술상] 최우수상 ‥ 김동신 만도 상무
2000년 겨울 스웨덴의 한 빙판길.30대 운전자가 4시간 넘게 똑같은 코스를 돌며 한 가지 테스트에 몰두하고 있었다. 꽁꽁 얼어붙은 도로에서 핸들을 돌릴 때 자동 제어장치가 몇 초 후에 반응해야 자동차가 미끄러지지 않고 운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시험하는 중이었다. 반응 속도를 1초 1.1초 1.2초 1.3초 등으로 수십 차례 바꿔가며 시험 주행을 반복한 끝에야 최적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김동신 만도 신규사업실 상무(47 · 사진)는 24일 "엔지니어 입장에서 좋은 기술이 과연 운전자에게도 좋은지 아는 게 중요하다"며 10년 전 얘기를 꺼냈다. 그는 '초짜 연구원' 시절부터 겨울철마다 빙판길 시험 주행을 위해 눈이 많은 스웨덴이나 중국과 러시아 국경지대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는 2004년 10월 만도 중앙연구소 개발팀장 시절 지식경제부의 연구 · 개발(R&D) 자금을 지원받아 '지능형 섀시 통합제어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자동차부품연구원과 서울대,부산대 연구팀이 기술 개발에 가세했다.

그에게 '제2회 으뜸기술상' 최우수상을 안겨준 이 기술은 기존에 따로따로 움직이던 전자제어 제동장치(브레이크)와 전자제어 조향장치(방향장치),전자제어 현가장치(완충장치)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한 것이다. 일종의 통합 제어 시스템으로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를 줄이고 승차감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이다.

김 상무는 "시각 정보만으로 판단할 때보다 청각과 후각까지 활용하면 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처럼 여러 장치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하면 주행 성능을 훨씬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전자제어 제동장치와 전자제어 조향장치를 동시에 활용하면 운전자가 핸들을 급하게 꺾을 때 차량이 전복되는 것을 막거나 눈길이나 빗길에서 차량이 미끄러지는 것을 막는 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자동차 선진국은 이미 수년 전 이 기술을 개발했다. 국내에서는 작년 9월 만도가 처음으로 개발에 성공했다. 독자적인 기술 개발로 수입 대체 효과는 물론 새로운 수출 시장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만도는 이미 국내 자동차업체뿐 아니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이 시스템을 납품하고 있다.

시장 전망도 밝다. 만도는 전자제어 제동장치와 전자제어 조향장치,전자제어 현가장치를 각각 팔거나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 파는 방식으로 지난해 이 부문에서 189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2262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기술 개발에 투자한 전체 자금(261억원)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올릴 전망이다.

김 상무는 "2015년까지 누적 매출은 1조4000억원에 달하고 이 기간 통합 제어 시스템을 적용하는 차량이 연간 10%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여러 제어장치를 통합할 수 있는 기술이 없는 자동차 부품업체는 앞으로 시장에서 영향력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도는 현재 김 상무가 개발한 통합 제어 시스템에 추가로 다른 장치를 붙이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앞 차와의 간격을 자동으로 유지할 수 있는 '스마트 크루즈'나 초음파 센서와 전자 조향장치를 이용한 자동주차 장치 등이 대표적이다.

김 상무는 연세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공학석사,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만도에 입사해 20년 넘게 엔지니어로 일하다 지난 2월 중앙연구소에서 본사 신규사업실로 자리를 옮겼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것이 그의 임무다.

그가 요즘 관심을 갖는 분야는 정보기술(IT)과 다른 산업의 융합.첨단 자동차 부품이 대부분 IT와 결합돼 있듯이 에너지 건설 헬스케어 등 다른 산업 분야도 IT와 융합하면 새로운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연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이 정확히 뭘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라며 "그래야 연구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거나 쓸데 없는 일에 시간을 뺏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