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TV 셋톱박스용 부품을 만드는 A사 C사장은 요즘 해운회사를 찾아 다니느라 다른 업무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1주일 내에 배와 컨테이너를 내줄 해운선사를 확보하지 못하면 유럽 수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대형 선사를 수소문했지만 빈칸을 찾지 못했다. 어렵사리 서울 종로에 본사를 둔 신생 해운업체 B사의 K사장을 만났지만 이마저도 허사였다. "배 구하기도 어렵고 화물용 컨테이너가 품귀여서 운송계약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웃돈을 주고라도 중국과 일본 쪽에 알아봐 달라고 하소연했지만 확답을 얻지 못했다.

중소 수출업체들이 해운물류 대란(大亂)으로 수출품 선적에 비상이 걸렸다. 2008년 9월 금융위기 이후 세계 물동량이 급감하자 해운회사들이 보유 선박과 컨테이너를 대거 정리한 데 따른 후유증 탓이다. 올 들어 세계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물동량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지만,본격 회복을 장담하지 못하는 해운회사들은 선박 및 컨테이너 추가 확보를 망설이고 있다.

해운업계는 금융위기 발생 직후 운항노선을 줄이거나,확보해둔 컨테이너를 반납 또는 처분해 버렸다. 한마디로 수급 미스매칭이 발생한 것이다. C사장과 K사장은 "새 컨테이너는 물론이고 중고와 고물 컨테이너 가격이 50% 이상 폭등한 상태"라며 "이 같은 미스매칭이 가까운 시일 내에 해결될 것 같지 않아 괴롭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장기운송 계약으로 선박과 컨테이너를 확보한 상태여서 늘어난 수출 물량을 소화하는 데 어려움이 덜하지만,장기계약을 못하는 처지인 중소 수출업체들은 선박과 컨테이너를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컨테이너가 품귀 현상을 빚자 부산 부두 컨테이너 야적장에서는 낡아빠진 고물 컨테이너를 수리하는 사업자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컨테이너 임대업체들이 대거 할인 판매에 나섰던 작년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중소 수출업체들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 1년여 동안 급락한 운임이 최근 급등하면서 수출비용 부담이 커졌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유럽으로 가는 해상 운임은 40피트당 4200달러까지 올랐다. 금융위기 여파가 거셌던 작년 2분기 평균 운임인 1200달러에 비하면 4배 가까이 오른 가격이다. 해운 업황이 최고조에 달한 2008년 5월 운임의 8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김동민/부산=김태현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