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나 물고기,짐승은 내가 잘 아는 것들이어서 그것을 잡는 방법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용이란 것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는데,마치 용을 본 것 같구나(至於龍,吾不能知其乘風雲而上天.吾今日見老子,其猶龍邪)!" ―<사기 노자한비열전>

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묻고 돌아와 제자들에게 한 말이다. 공자가 노자를 용에 비유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최상급의 찬사였다. 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상서로운 영물(靈物)의 으뜸이자 천변만화의 능력을 지닌 권위의 표상으로 통한다. 특히 송(宋) 이후 중국의 황제들이 권력의 상징으로 용을 독점한 이래,상상의 동물인 용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을 풍기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물론 황제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용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이런 용을 오매불망 좋아한 사람이 있었다. 중국 춘추시대 초(楚)의 지방 장관 섭공 자고(葉公 子高)이다. 그는 공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논어》에도 자주 등장한다.

한번은 그가 자로(子路)에게 "그대의 선생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물었는데 자로가 불쾌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얘기를 들은 공자가 "한번 책을 들면 먹는 것도 잊고 이치를 깨달으면 마냥 즐거워 늙을 줄도 모르는 노인네라고 말하지 그랬니(女奚不曰其爲人也. 發憤忘食, 樂而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라며 웃어넘겼다. 《논어 술이》의 이 기사에 주자는 주(註)하기를 '섭공은 대부인 주제에 공(公)을 참칭한 자로서, 묻지 않아야 할 것을 물었기 때문에 자로가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힐난하고 있다. 그가 대단히 무식하고 작은 권력에 으스대기 좋아하는,이른바 완장형(型)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그가 용을 좋아했다가 단단히 혼이 난 적이 있다.

"섭공 자고는 자나깨나 용을 좋아했다(葉公子高好龍).그는 언제나 용이 그려진 패검을 차고 용이 새겨진 장신구를 걸치고 다녔으며,집안에는 기둥마다 용 그림을 걸고 용 무늬가 든 기물을 사용했다. 하늘에 있던 용에게까지 그 소문이 미쳤다. '그렇다면 이 자에게 나를 한번 보여 주지.' 하계로 내려온 용은 섭공의 집 뜰에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창문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를 보고 기겁한 섭공이 모든 걸 내팽개치고 달아났는데,혼비백산한 나머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섭공이 좋아한 것은 진짜 용이 아니라, 사이비 용이었다(是葉公非好龍也,好夫似龍而非龍者也)."―《신서 잡사(新序 雜事)》

요샛말로 하면 섭공은 용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좋아했던 것뿐이라는 얘기다. 공자의 제자인 자장(子張)의 말인데,이야기 솜씨가 매우 발랄하다. 그는 노 애공(魯 哀公)이 현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불원천리 찾아간 적이 있는데,애공은 일주일이 되도록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화가 난 그는 섭공을 예로 들면서 "임금이 좋아하시는 것은 현자가 아니라 현자 아닌 자를 좋아하실 뿐"이라고 일갈하며 떠났다고 한다.

섭공의 후예들은 오늘날에도 이어져,요란하게 명분과 주장을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사정으로든 주장하는 명분이 겉으로만 그럴 뿐 속마음이야 그렇지 않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명분이 과연 어떤 내용이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라면 이는 그 한 사람을 넘어 많은 사람에게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요즘 섭공들이 자기가 좋아한다고 남들에게 강권하는 것은 예사이고,정작 문제가 터지면 남 먼저 꽁무니를 빼는 바람에 남은 사람들이 뒷감당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