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역사를 살펴보면 동 페리뇽,동 루이나트 같은 수도승들과 함께 몇몇 여성들의 활약상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19세기는 물론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여성의 사업 참여는 흔치 않았다. 특히 경쟁이 치열했던 샴페인하우스의 경영은 전적으로 남자들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바브 클리코와 루이스 포머리,릴리 볼렝저는 모두 남편의 사후에 샴페인하우스 경영을 맡은 여인들이다. 이들은 각각 '뵈브 클리코' '포머리' '볼렝저'를 최고 수준의 하우스로 키웠을 뿐 아니라 샴페인 업계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공통점이 있다.

'마담 뵈브 클리코'로 잘 알려진 바브 니콜 클리코 퐁사르뎅은 상파뉴 지방에서 '위대한 부인(La Grand Dame)'으로 불린다. 결혼 7년차이던 1805년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27세 젊은 나이에 가족의 전 재산이 투자된 하우스의 경영을 맡았다. 비록 포도 재배와 와인 제조 경험은 전혀 없었지만,타고난 상인이자 신기술 개발자로 뛰어난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먼저 그는 나폴레옹 전쟁 동안 대부분의 유럽 왕실을 고급 샴페인의 주요 고객으로 확보했다. 특히 수지 맞는 러시아시장에 집중해 황실을 비롯한 수많은 부유층을 사로잡았다.

또한 유능한 제조책임자인 앙투안 뮐러의 도움으로 샴페인 제조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았다. 샴페인은 다른 와인들과 달리 병 속에서 1차 발효를 한다. 이때 병 속에 남는 침전물 때문에 투명한 샴페인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기포를 많이 잃지 않으면서 침전물을 제거하는 '르뮈아쥐(Remuage)' 기법을 개발했다. 이 기법은 45도 각도로 구멍 낸 나무틀에 유리병을 거꾸로 놓고 돌려주는 단순한 것이다. 그러나 효과가 매우 커,지금도 여러 하우스에서 이용한다. 미망인이란 뜻의 '뵈브'와 가문이름이 합성된 샴페인하우스 '뵈브 클리코 퐁사르뎅'은 그의 애칭을 딴 최고급 샴페인 'La Grand Dame(라 그랑 담)'을 생산하는 세계 제2위 샴페인하우스로 성장했다.

상파뉴 지방을 여행하면서 놓치지 않고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중심 도시 랑스에 있는 샴페인하우스 '포머리'다. 영국과 스코틀랜드 주요 고객 5명의 집을 모델로 했다는 5동(棟)의 아름다운 건물과 샴페인 2000만병이 보관된 지하 30m 저장고는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지다.

특히 로마 지배 시절 석회석을 캐고 남은 120개의 갱도를 터널로 연결시킨 지하 저장고는 총 길이가 18㎞에 이른다. 둥근 고딕식 천장을 가진 동굴의 석회벽에는 프랑스 예술가 앙리 나베의 프레스코풍 작품 등이 조각돼 있어 와인과 예술을 동시에 음미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심미안적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완성시킨 루이스 포머리는 1858년 남편이 죽기 전까지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그러나 37세 나이에 마지 못해 경영을 맡은 후 죽은 남편보다 훨씬 더 많은 성과를 냈다. 가장 먼저 모직사업을 접고 다양한 종류의 와인 생산도 중단했다. 하우스를 오로지 샴페인에만 집중토록 한 것이다. 신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 처음으로 영국 시장을 여는 데 성공했다. 특히 1874년 영국으로 수출한 샴페인은 단맛이 주류를 이루던 업계에서 최초로 나온 달지 않은 '브뤼(Brut) 스타일'로 기록된다. 그는 하우스의 앞날을 위해 좋은 포도밭 확보에도 전력을 다했다. 현재 좋은 포도밭을 가장 많이 소유한 포머리는 품질뿐 아니라 포도의 자급자족률도 높고 생산 규모도 4~5번째로 많다.

20세기 중반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많은 샴페인하우스가 효율이 떨어지는 오크통 대신 스테인리스 발효통을 도입하는 등 시설을 현대화해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나 최고 품질을 목표로 전통적 제조방식을 고집한 여인이 있다. 매일 일과로 자전거를 타고 포도밭을 돌아보던 샹파뉴의 전설적인 여인 릴리 볼렝저다. 그는 나치 지배가 계속되던 1941년,죽은 남편의 뒤를 이어 42세에 경영에 참여했다. 그러나 결혼생활 18년 동안 착실하게 경영수업을 받은 덕에 다른 두 여인들에 비해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릴리는 재임 36년 동안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고 생산 규모도 두 배로 늘렸다. 이후에도 상파뉴 지방을 대표하는 유명 인사로 여러 차례 해외를 돌며 브랜드 홍보에 주력했다. 뛰어난 미각의 소유자였던 릴리에게 샴페인은 단순히 마실 것 이상이었다.

그는 비망록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나는 행복하거나 슬플 때 샴페인을 마십니다. 가끔 혼자서도 마시지만,친구가 있다면 당연히 마셔야 하겠지요. 배고프지 않으면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배가 고파지면 마시지요. 목 마르지 않으면 절대 건드리지 않겠지만….(나는 항시 목 말라 있지요)"

와인 칼럼니스트 · 여유공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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