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달러 환율이 3년9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는 등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대기업 경영기획실에도 비상이 걸렸다.

삼성 현대ㆍ기아자동차 LG SK 등 주요 그룹들은 올초 연평균 원ㆍ달러 환율을 930원 안팎으로 잡았다가 하반기 들어 980원 수준으로 조정했으나 25일 환율 수준이 이보다 100원 가까이 높아지면서 경영 전반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느라 부심하고 있다. 환율 상승이 곧바로 수익성 악화로 직결되는 유화 철강 항공 등의 업종을 거느린 그룹들은 올초 원자재 급등에 이어 환율 악재를 어떻게 이겨낼지 대책을 세우느라 골몰하는 모습이다.
◆고민 커지는 기업들

원자재 수입 규모가 큰 업종의 기획 및 재무 담당자들은 원ㆍ달러 환율의 가파른 상승세를 더욱 우려하고 있다. 외환 당국의 환율 억제선이 사실상 뚫려 앞으로 환율이 더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에서다. 현물시장에서 원유를 외상으로 들여오는 정유업계나 달러화 설비투자액이 많은 일부 업종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환차손을 막기 위해 고민 중이다. 그러나 부채성 자금을 결제하지 않는한 환차손은 계속 커져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이에 따라 일부에선 외환시장 내 달러화 유동성을 분석하면서 환율 상승폭에 따른 시나리오별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환율 상승으로 커진 수입 원자재 가격부담을 원가에 전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이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최근 철강제품 가격이 가뜩이나 많이 오른 상황에서 추가 인상을 하기는 어렵다"며 "물가 인상에 미치는 영향이나 자동차 전자 등 최종 수요처 업황에 끼치는 파장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달러화 부채나 원자재 수입이 많지 않은 업체들도 고민은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연초 사업계획에 반영한 예상 환율은 연평균치여서 환율이 급등한다고 해서 부담이 갑자기 커지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환율 움직임이 연말까지 간다면 경영 전반에 압박이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환시장에 목 매는 유화ㆍ철강업체

SK에너지는 환율 급등으로 이날 하루 장부상 수치이긴 하지만 300억원 넘게 날렸다. 원유수입 대금이 외화부채로 잡혀 원ㆍ달러 환율 1원 상승 때 20억원에 가까운 환차손을 본다. 여기다 환율 급등세가 이어지면서 금융권의 달러 부족이 가속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달러 부족으로 외화대출이 줄거나 중단되면 현물시장에서의 원유 도입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 매일 외환시장을 주의깊게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회사들도 수익성에 타격을 입을까 우려하고 있다. 원재료인 철스크랩(고철)과 슬래브(쇠판)를 외국에서 대량 수입할 수밖에 없어 환율 상승은 곧바로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여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도 환율 급등에 걱정이 많다. 항공업종 특성상 달러 수입보다 지출이 연간 20억달러 이상 웃돌아 환율 상승은 영업손실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표정관리 들어간 수출업체

현대차는 수출 비중이 70% 이상이어서 원ㆍ달러 환율 상승은 수익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달러결제 비중이 30%로 원화(4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아 달러 강세는 매출 증대로 이어진다. 환율이 10원 오를 때 매출은 1200억원 늘어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해외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부쩍 높아졌다"며 "환율 변화를 곧바로 가격에 반영하지 않지만 같은 가격에서 수익의 폭이 달라지는 만큼 다양한 마케팅 정책을 펼 수 있다"고 전했다.

조선업체들도 선박대금 대부분을 달러로 받아 환율 상승은 이익 증가로 이어진다. 업계에 따르면 70% 이상의 대금을 선물환으로 헤징하지만 나머지 대금은 환율 상승분만큼 이익으로 연결된다.

김수언/장창민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