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법제처장은 '거침없이 말하는 인물'로 유명하다.변호사 출신이니 말을 오죽 말을 잘 할까마는 이 처장의 경우는 '원칙이 분명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과 확신에서 나오는 당당함이다.

그는 스스로를 '헌법 정신에 입각해서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가진 신념이 헌법 정신에 유래한다는 뜻이다.

90년대 초중반엔 사회주의자,운동권이란 말까지 들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엔 뉴라이트 운동을 하면서 수구 보수주의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에 대해 "누구는 나를 좌로,혹자는 우로 몰아세우지만 저는 항상 헌법정신에 입각해 일관된 주장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법학을 하지 않았으면 무엇을 했을 것 같냐고 물어보자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아마 고고미술사학을 했을 겁니다.징기스칸이나 알렉산더 무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정년이후엔) 고고학자가 되서 그런 것을 조사하고 탐구해보고 싶습니다.지금도 시간이 날 경우 가끔 유적지를 돌아보는 여행을 하곤 합니다."

'길 나지 않은 산길을 혼자 뚫고 간다'는 독특한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다운 대답이다.

전북 정읍에서 3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 처장은 중학교 졸업 6개월 만인 1971년 7월 대입검정고시는 물론 그해 예비고사까지 합격했다.

검정고시 합격 후 대학 진학을 미루고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서 1년8개월간 300여권의 책을 독파했다.

그때가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책 읽기,글쓰기,암기력에는 자신있다고 하는 그의 실력은 이때 닦여진 것이다.

특히 수학의 미ㆍ적분이 이해가 안될 경우 통째로 외워 시험을 치뤘다고 한다.

74년 전북대 법학과에 입학,졸업 다음해인 79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그 후 6년간 법제처 사무관.법제관으로 재직하며 서울대 법학과 대학원을 다녔고 85년에는 사법시험(27회)에 합격했다.

89년 첫 출범한 헌법재판소 연구관직에 특채된 그는 94년 5월 변호사로 개업했다.

그때부터 헌법재판소와 관련한 소송을 190여건 제기했다.

이 중 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에 의해 만든 선거구획정 법안과 군 가산점 제도에 관한 법,재외동포 차별법 등 40여건의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는 경실련 사무총장을 지냈다.

어떤 역할,어떤 처지에 있던지 그가 일관되게 주장한 것은 '헌법 정신'이었다.

그가 보기에 헌법 정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기본권 존중을 근본으로 한 국민 통합의 기본이다.

이 처장은 부인 이정숙(50세)씨와의 사이에 근평,근우,근경 등 3남을 두고 있다.

평생 공부를 해 왔지만 앞으로도 그는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그는 이날도 '내 인생에 2차는 없다'며 저녁 식사만 마치고 귀가해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감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약력
△1954년 전북 정읍 출생
△전북대학교 법학과,서울대학교 법학 박사
△1979년 제23회 행정고시 합격
△1985년 제27회 사법고시 합격
△법제처 사무관ㆍ법제관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ㆍ감찰위원
△전북대 초빙교수
△경실련 사무총장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장
△선진화국민회의 상임공동위원장
△법무법인 서울 대표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 대표
△동국대 법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