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는 어제 기자회견을 갖고 "각 정당들의 합의하에 국회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내 내년도 예산안이 심의 의결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4일 "예산안 처리가 늦어져 자칫 준예산으로 가게 될 경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공기능이 상당 부분 정지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과 같은 맥락(脈絡)이다.

정치권이 대통령 선거에만 매몰돼 예산안 심사를 중단하고 있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새해 예산안 처리가 이미 헌법이 정한 시한을 넘겼는데도 향후 전망조차 지극히 불투명하다는 점이 더욱 큰 문제다.

과거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해의 경우 정치권은 예외없이 11월중 예산안을 통과시켰는데도 이번 국회는 그마저 무시하고 아직 심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BBK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 발표 이후 대선정국이 오히려 더욱 극단적인 대립국면으로 치달으면서 정치권의 예산안에 대한 관심은 아예 실종되고 있는 상황이다.

예산안이 제때 처리되지 못하면 나라살림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국민의 실생활에도 피해가 돌아오게 된다.

당장 내년 1월 말부터 시행키로 한 기초노령연금의 지급 준비가 어려워지고 중소기업 자금 지원 등도 예정대로 추진되기 힘들어진다.

연구개발 및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도 지연돼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도 차질을 빚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대선 후 임시국회를 소집해 28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유류세 인하와 감세법안 등의 처리가 선결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대통령 당선자의 의중(意中)을 반영해 예산안을 수정하겠다는 의도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다른 정당들이 반발하지 않을리가 없고,설령 임시국회가 열리더라도 예산처리에 실패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정부가 준예산을 짜야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야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아무리 대선이 중요하다고 해도 국회가 예산안을 처리하지 않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이자,당리당략에 파묻혀 민생을 도외시하는 처사에 다름아니다.

국회는 예산안 처리에 당장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대선 일정과 예산안 처리가 연계되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