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수익 창출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핵심 인력들이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각광받고 있는 증권사로 속속 떠나고 있다.

'저축에서 투자'로 재테크 트렌드가 변하는 데다 능력을 발휘한 만큼 성과급을 준다는 점에서 핵심 인력의 '탈(脫) 은행' 현상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예금에 이어 인재들마저 증권사에 빼앗기고 있는 은행들은 집안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을 찾지 못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PB는 빼앗기고 IB인력은 못 구하고

증권사로부터 러브콜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직종은 프라이빗뱅커(PB)들이다.

은행에 비해 고객 자산관리 능력이 부족한 증권사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PB영업이 강한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의 과ㆍ차장급들이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

이 두 은행에서만 9월 이후 10여명의 PB들을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등에 빼앗겼다.

일반 직원들까지 합하면 30명 이상이 증권사로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한국 영업을 강화하려는 메릴린치까지 은행 PB 스카우트전에 가세하면서 'PB 엑소더스'가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증권사로 이직하는 직원들에게 '고객 정보를 유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는 등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인력 유출에 속수무책이다.

은행들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으려는 투자은행(IB) 업무를 맡을 역량있는 인재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있다.

홍대희 우리은행 IB본부 부행장은 "IB는 사람 싸움인데 국내 은행의 경우 능력에 맞는 충분한 대우를 해줄 수 없어 IB부문의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은행도 IB 등 핵심 분야의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증권사 신설을 연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무늬만 성과급' 체계 개선해야

핵심 인재들이 은행을 기피하는 이유는 증권사에 비해 은행 성과급 체계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 증권사로 옮긴 전직 은행 PB는 "은행에서는 성과가 좋든 좋지 않든 똑같은 돈을 받기 때문에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며 "잘 하면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게 증권사로 옮긴 가장 큰 이유"라고 토로했다.

실제 은행들은 급여의 일부분을 성과급으로 책정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개인별이 아닌 지점별로 차등 지급하고 있다.

일반 직원에 대해 개인별 성과급을 주는 곳은 우리은행 정도다.

그 외의 다른 은행들은 영업 성과가 좋은 직원이라도 우수 지점 소속이 아니면 성과급을 많이 주지 않고 있다.

영업점별 성과급 비율도 전체 급여의 5~15% 정도에 그치고 있다.

반면 증권사들은 개인 영업실적에 따라 기본급의 2~3배가 넘는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다.

은행의 이런 '무늬만 성과급' 체계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자 성과보상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지창 은행연합회장은 28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전문성과 능력에 따른 성과보상 체계를 구성원들이 용인해야 은행이 발전하면서 파이가 커진다"고 말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인적 자원이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개념으로 접근했고 성장률이 좋은 기업일수록 인건비를 많이 사용했다"며 "은행도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상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