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희망퇴직을 확대해 청년 고용을 늘리라는 정부 주문에 골머리를

"4050 중·장년 은행원 내보내고 2030 청년 더 뽑아라"

입력 2018-06-01 17:33:44 수정 2018-06-02 12:21:19
세대갈등 부추기는 정부…은행권 '벙어리 냉가슴'

은행 고용 간섭하는 정부

최종구 "퇴직금 더 주더라도
희망퇴직 늘리고 그만큼
청년채용에 신경 써달라"

은행들 "현실도 모르면서"

비대면 거래 확대로 점포 감소
신규채용 무작정 늘릴 수 없어
'눈덩이' 퇴직금 마련도 문제
은행들이 희망퇴직을 확대해 청년 고용을 늘리라는 정부 주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은행마다 인력 운용방안이 정해져 있는 마당에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못마땅한 표정이다. 희망퇴직 대상이 주로 50대인데, 이들은 “지금 나가면 자녀 학비는 어떻게 하느냐”고 울상을 짓는다. 자칫하다간 일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세대간 갈등에 은행이 덤터기를 쓸지 모른다. 그렇다고 정부가 하는 일에 대놓고 반대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청년 고용 강조하는 금융위원장

금융회사에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 이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다. 최 위원장은 지난달 9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은행에 희망퇴직을 늘리도록 권장하고 퇴직금을 올려주는 것도 적극 권하겠다”며 “인센티브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최 위원장은 “은행에서 눈치 보며 지내는 것보다 퇴직금 받아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낫다”며 “금융 공기업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달 28일 은행장 간담회에서 다시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퇴직금을 더 많이 주더라도 희망퇴직을 늘리고 그만큼 신규 채용에 더 신경써 달라”고 말했다. 이날 최 위원장은 은행장들에게 희망퇴직과 신규 채용에 대해 ‘자율적인’ 시행을 언급했지만 은행장들은 “어차피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정부 방침이더라도…”

은행들은 정부가 채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하고 있다. 한 은행 인사 담당 임원은 “각 은행이 영업환경과 경영전략에 따라 인사 방침을 정하는데 정부가 일괄적으로 희망퇴직과 채용 규모 확대를 언급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희망퇴직 확대를 어떻게 임직원에게 설득하느냐다. 한 50대 은행원은 “뭘 해야 할지 준비가 안 됐는데 당장 퇴직금만 보고 나갈 순 없다”고 토로했다. 신한, 우리, KEB하나 등 은행마다 전직지원제도 등을 마련해 희망퇴직자의 재취업, 창업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임금피크제에 들어선 한 은행원은 “지금 나가면 대학교 1학년 딸과 고등학교 2학년 아들 학자금은 누가 대냐”며 “퇴직금을 쓰고 나면 남은 인생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 은행장은 “50대 부모가 퇴직하고 직계자녀가 취업한다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며 “다른 집 자녀 취업을 위해서 나가달라고 얘기하라는 것이어서 괴롭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돈 대줄 것도 아닌데…”

퇴직금도 문제다. 국민은행에서는 2016년 대규모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2995명이 떠났다. 당시 퇴직자에게 1인당 평균 2억800만원가량을 지급하면서 86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갔다. 우리은행도 작년 임금피크제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해 1020명에게 36개월치 급여를 퇴직금으로 지급했다. 신한은행도 올초 희망퇴직 신청 대상자를 1978년생으로 확대하면서 700여 명이 떠났고, 2000억원 넘는 비용이 들어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퇴직금 지급한도가 정해져 있어 함부로 늘릴 수 없다”며 “만만치 않은 비용 부담을 고스란히 은행이 떠안아야 하는데 정부 주문에 호응해 특별퇴직금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 공기업들은 여력 자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은행들은 정부 요구대로 청년 취업을 확대하다간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정보기술(IT)이 발달하고 인공지능(AI)이 은행 업무에 도입되다 보니 점포와 인력을 계속해서 줄여가야 할 상황이라는 게 은행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국민, 신한, 우리, KEB하나, 농협 등 5개 은행이 2016년 4717명을 내보냈지만 1665명만 채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씨티은행과 JP모간 등도 점포와 인력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다. 한 은행 인사팀장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부작용으로 청년 일자리가 줄고 있는데 이를 은행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상미/윤희은/김순신 기자 saramin@hankyung.com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