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기자의 알쓸커잡] 언제는 커피를 보약으로 마셨나요?

(24) 커피는 발암물질, 항암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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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담배 피울 때마다 사랑에 빠질 때랑 똑같은 호르몬이 나온대.”

애연가인 선배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볼 때마다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았습니다. 어디서 저런 멋진 핑계를 찾았는지. 처음엔 ‘사랑 같은 소리 하네’라고 했지만 나중엔 그냥 믿기로 했습니다. 그 말이 진짜인지도 굳이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할 거라면 늘 사랑에 빠지는 것 같은 착각(?)을 하는 게 백번 나을 테니까.커피도 그렇습니다. 한국인 1인당 연평균 소비량은 530잔. 카페인의 합법적 중독을 즐기는 사람이 늘면서 커피에 대한 각종 판타지도 늘었습니다. 항암효과, 각성효과 등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자고 나면 하나씩 나왔죠. 실제 커피 속 폴리페놀은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년 전 커피가 간암, 자궁내막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놓은 적도 있었죠. 어쨌든 커피는 현대 사회에 없어선 안 될 ‘영혼의 영양제’가 된 게 사실입니다.

얼마 전 커피업계를 긴장하게 한 소식이 있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카운티 고등법원이 “모든 커피 제품에 발암 경고문을 부착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담뱃갑에 그려진 끔찍한 그림이 커피컵에도 그려진다니. 법원은 캘리포니아 소재 독성물질 교육조사위원회(CERT)가 90개 커피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스타벅스 그린마운틴커피 로스터스 등 미국 유명 커피 제조회사가 대부분 포함돼 있죠. 지역 사람들에게 200여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소송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번 소송에서 문제가 된 물질은 ‘아크릴아마이드’입니다.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물질인데요. 색도 없고, 향도 없습니다. 탄수화물 함량이 높고 단백질이 낮은 식물성 식품을 120도 이상 고온으로 가열할 때 발생해 감자튀김, 비스킷 등에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보다는 정작 커피를 볶는 로스터들이 원두 제조 과정에서 냄새를 직접 맡아보며 이 물질을 흡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이번 커피 판결을 두고 반대 의견도 많습니다. 다수는 ‘유해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을 통한 아크릴아마이드 섭취는 양이 미미해 암에 걸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여겨진다”며 “커피는 안전한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고온 조리 시에만 발생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하루 커피를 3~4잔 이상 마시는 것이 아니라면 무해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항암물질이랬다가, 발암물질이랬다가. 어쩌라는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답은 하나. “우리가 언제는 커피를 보약으로 마셨나요?” 지금 딱 생각나는 유행어가 있습니다. “맛있으면 0칼로리!”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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