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것은 생명체만이 아니다. 침체된 분양시장에서 미분양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지면서 아파트 평면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발코니 무료 확장, 섀시 무료 시공, 1층 정원 공간 제공, 가변형 벽체(확장형) 등이 초기 나왔던 평면 마케팅이라면 최근에는 1가구에 두 채를 구성하는 한지붕 두가족형(세대분리형) 평면, 40평형 이상의 대형 평형에서나 선보였던 4-베이 평면이 중소형 평형에도 도입되고, 최상층 팬트하우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복층형이 이제는 어느 평형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게 됐다.

이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세대분리형과 4-베이 평면이다. 세대분리형 평면은 2009년 하반기에 영종하늘도시 한양수자인에서 첫 선을 보인 뒤 나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주택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형 평형은 일부 실거주, 일부 임대 목적으로 구성하고, 중소형 평형은 아예 임대수익형 모델로 설계하는 유형이지만 아직은 대형 평형에 대한 구입 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 도입하는 단지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세대분리를 한다고 해도 대형 평형 구입 및 보유 부담이 여전하고 임차인 찾기도 쉽지 않아 사업주체들이 바라는 만큼 주택시장에서 그리 큰 호평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4-베이 평면은 그간 40평형대 이상의 대형 평형에서 종종 있어왔지만 최근에는 중소형 평형대까지 침투했다. 채광이 좋고 전면 발코니를 모두 확장하면 실내 전용면적이 1.5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나름 인기가 있는 평면이기도 하다.

수도권 분양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도 4-베이 평면을 도입한 단지는 그래도 선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인기를 나름 짐작해 볼 수 있다. 가장 최근 분양한 수원 래미안 영통 마크원이 그 예다. 5월 19일부터 23일까지 1, 2단지에서 모두 1330가구가 분양돼 1단지 1.31대 1로 전 주택형 마감, 2단지 0.78대 1의 청약 성적을 기록했다.

비록 2단지 7개 주택형에서 신청자가 크게 못미쳐 미달을 기록했지만 최근의 수도권 분양시장을 감안하면 상당히 선방한 셈이다. 물론 래미안이라는 브랜드를 놓고 보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번 래미안 영통 마크원 청약 결과를 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다. 1단지에서 1순위에서 마감된 84.94㎡A형(15.67대 1)과 84.95㎡E형(1.18대 1), 미분양이 발생한 2단지에서 1순위에 마감된 84.94㎡A형(2.15대 1)과 3순위에서 마감된 84.94㎡D형(3.5대 1)과 115.71㎡A형(1.5대 1, 이상 전용면적 기준) 모두가 4-베이 평면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채광, 통풍, 개방감 등 4-베이의 장점이 소비자들에게 나름 어필됐던 탓이다.

각설하고 4-베이는 기본적으로 방이 3개이고, 거실이 1개인 평형에 도입 가능한 구조다. 거실을 비롯해 방3개가 모두 발코니 전면을 향해 배치된 평면이 바로 4-베이다. 따라서 방이 3개 이상인 전용면적 85㎡(공급면적 기준 31평형~35평형)이상의 중대형 평형(간혹 27평형에도 방이 3개인 경우가 있음)에 4-베이를 도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용면적 85㎡의 경우에도 내부구조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경우에는 4-베이를 절대로 도입하지 않는다. 과거 복도식이거나 지은 지 15년 이상된 아파트 대부분이 방1과 거실만이 전면 발코니 부분에 배치된 2-베이 평면이 주를 이뤘지만, 이후 아파트는 방2과 거실이 전면에 배치되는 3-베이 평면이 일반화됐다. 모두 기능적인 측면보다는 구조의 안정성을 중요시한 탓이다.

그렇다면 과연 전용면적 60㎡ 이하의 소형 평형에도 4-베이 평면 도입이 가능할까? 전용면적 60㎡(공급기준 24~25평형)는 기본적으로 방이 2개이다. 물론 어찌어찌해서 물리적으로 방을 3개로 늘릴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다소 기형적이거나 불안정적인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거실이 지나치게 좁아지거나 방이나 침실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 신도시 분양에서 전용 59㎡에 4-베이도 모자라 4.5-베이를 도입했다고 해서 대대적으로 이슈화된 적이 있다. 청약 결과에서도 전체적으로 대거 미분양이 발생한 가운데 4-베이나 4.5-베이를 도입한 타입 대부분은 순위내에서 청약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어떤 구조인가 궁금해서 4-베이 또는 4.5-베이를 도입한 평면을 자세히 살펴봤다. 어떤 타입은 내력벽으로 구성된 방 2개, 거실 1개가, 어떤 타입은 방 2개와 거실, 화장실이 채광이 되는 방향으로 배치돼 있다. 이것만 보면 사실상 3-베이 내지 3.5-베이다. 화장실을 무시하면 그냥 모두가 3-베이다.

왜 4-베이라 그랬을까 더 자세히 보니 안방이 아닌 세컨드룸(키즈룸)이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고 중앙에 실선이 하얗게 그어져 있다. 이른바 가변형 벽체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가변형 벽체를 설치하면 방이 2개로 분리돼 방이 총 3개가 된다. 거실 포함하면 4-베이가 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키즈룸은 안방보다 면적이 좁다. 특히 전용면적 60㎡이하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설계도면이 없고, 또 방마다 수치가 드러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가변형 벽체를 설치할 수 있는 키즈룸의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 또 키즈룸을 2개로 나눴을 경우의 각각의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었다.

설령 가변형 벽체를 설치해 방을 2개로 나눈다고 해도 그 각각의 방들이 방으로서의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공간이 확보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4-베이가 아니라 변형된 4-베이 또는 3-베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옳다. 단지 4-베이라는 것만 보고 청약한 소비자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매우 엄밀히 따져야 할 부분이다. 공간 구성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거나 전용면적 60㎡이하 아파트 평면은 3-베이나 2-베이 구조가 안정적이다.닥터아파트(www.drapt.com) 이영진 리서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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