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0여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움([L] Lyceum)에서 수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詩와 철학, 논리학, 윤리 정치 등을 가르쳤으며, 조선시대 김득신(金得信)은 여러 학자들과 정자그늘에 모여 수만 번 읽은 책의 내용을 논하고 학문과 인생에 대해 토론하며 담소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34년 전, 70년대 중반, 어느 젊은이가 기업체 사장(CEO)들은 물론, 각 기업체 임직원들과 개인사업가들, 정치 관료, 고위 공직자 등 각계 각층의 다양한 리더들을 호텔에 모아 놓고 새벽부터 공부를 하게했다. 주한 외국인들은 그 모임에 초청을 받고 어리둥절했다.

”원, 세상에! 이렇게 일찍 공부를 시작하는 국민이 이 지구상에 여기 말고 어디 있단 말인가?”

그 모임이 며칠 전 1,600회를 맞이했으며, 그 젊은이는 70 이 넘은 어르신이 되셨다.
(인간개발연구원)

대학마다 최고경영자 과정, MBA 과정, CEO를 위한 골프 스쿨 등이 있고, 인터넷 세상에서 열리고 있는 학습의 장소 또한 어마어마하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모든 매체와 기술을 활용하여 마음껏 공부하고 있다. 인터넷과 컴퓨터를 통해 별의별 모임이 손쉽게 만들어지고 있다. 디지털을 이용한 e-learning과 사이버 세상의 만남, 직업과 직종별로 이루어지는 교류의 장(場), 나이와 지역을 초월한 사람들의 학습모임 등이 뜨거워지고 있는 것은 부존자원(賦存資源)이 없는 우리 나라에서 국가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다.

DMB 방송과 인터넷, 컴퓨터와 휴대폰, PDP와 MP3 등 다양한 매체와 각종 활용 기술(문자, e-mail, PPT자료, 화상 전송 등)의 발달로 손쉽게 얻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 70년대 중반 컴퓨터를 공부할 당시에 필자는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인 코볼과 포트란(COBOL / FORTRAN)이 전부일 줄 알았다. 정보산업과 컴퓨터 활용기술이 이렇게 급속도로 발전할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학습 기술과 매체의 발달로 인해 학문의 영역 또한 무너지고 있다. 공과대학을 나온 사람이나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이나 관계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마음껏 도전하면서 일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음식점이나 백화점이나 고유 영역은 이미 사라진 상태이다. 전공과 전문분야의 경계가 사라진 사회를 맛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최고의 품질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그저 그렇고 비슷비슷한 과목과 내용들의 학습과 모임이 중복되어 추진되고 있다. 여러 모임에 동시에 가입한 회원의 입장 또한 난처할 때가 많다. 독서 모임, 골프 모임, 각종 클럽, 동문회와 향우회, 협회와 포럼 등 곳곳을 찾아 가고 만나야 하는 의무와 책임감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회비 부담은 차치하고라도 시간의 통제가 어려워진다. 인맥관리가 중요한지 인간관계가 더 중요한지 모를 지경이다. 인간관계가 관리의 대상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정도다.


모임에 참가하여 강의를 듣고 세미나에 참석하여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헷갈린다. 이런 강의가 정말 필요한 걸까? 이런 내용을 꼭 알아야 하나? 혹시 이런 모임이 나의 인생을 방해 하지는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모임과 회합을 줄이기로 했지만 며칠 가지 않아 또 다른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놀란다. 꼭 필요한 모임이나 세미나가 아니면 인연을 끊기로 했지만 또 다른 모임에 관여하여 책임을 맡기도 한다. 뭐가 필요하고 뭐가 불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이 또한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왜, 사람들은 공부를 하고, 모임을 만들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뭔가를 표현하지 못해 안달일까?


정답은 인간의 욕구에 있다.

배우고 싶고, 느끼고 싶고, 깨닫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고, 존중 받고 싶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
안정을 느끼며, 사랑 받고 싶은 욕구
이런 과정을 통해 자아(自我)를 실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은 욕구

사람만이 갖는 아주 특별한 욕망이며 바람이다.

개나 돼지나 소나 말은 공부하지 않는다. 닭이나 소나무나 꽃은 미래를 창조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존재할 뿐이다.

사람만이, 아니 제대로 된 인간만이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고, 시키지 않은 일에 몰두하며, 가르치지 않아도 배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