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항변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풍경이다
때로는 먹을거리를 때로는 생활필수품들을 주욱 모아서 판다
채소 과일 곡식 별별 것들이 다 모여 있다

육교를 건너가는데 이상한 소리들이 들렸다
가만히 서서 들어보니 늘어선 물건들이 신세 한탄을 하는 소리였다
과일 : 어쩌다가 난 이렇게 됐단다
백화점 냉장케이스에서 우아하게
부잣집 마님 손길을 기다려야 할 팔자인데

곡식: 내 신세도 처량하다
포대에 잘 포장되어 마트에서 우아하게 팔려서
고급 레스토랑에 가볼까 했단다

채소: 나도 신경질나 죽겠어
먼지 뒤집어쓰고 이게 뭔꼴이람
이럴려고 밭에서 금지옥엽 자란 건 아닌데

듣자듣자 하니까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네

요 녀석들아 조용하지 못해 !
너희들의 임무는 어디서 어떻게 팔리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에게 귀한 음식이 되어
그들을 건강하고 즐겁게 해 주느냐에 있다

육교계단을 내려오며 나는 생각했다
내 임무는 무엇인가
저런 불평을 하지는 않았는가
지금 내가 처한 환경보다는 내가 하는 일이 더 소중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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