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도, 독자의 의견을 바라는 칼럼)



입사2년차의 번민과 해법














이번 칼럼은 좀 색다른 시도를 해보고자 합니다. 세상 모든 일에 하나의 정답이 없듯이 직장생활에서도 정답을 찾기 보다는 모범답안을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의 글은 독자님들의 의견을 이끌어 내기 위한 도입부분으로 생각하시고, 입사 2년차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덧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산에는 왜 가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또는 ‘다시 내려오기 위해서’라는 답을 듣고는 피식 웃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왜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은 ‘왜 사느냐’와 같이 어려운 질문이며 그에 대한 답 역시 다양하고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도 등산에 대한 답을 갖지 못했으나 몇 일전에 경남 창녕읍에 있는 <화왕산>을 다녀온 후 등산의 변(辯)을 갖게 되었다. 화왕산 정상에는 5만3천여 평의 갈대평원이 펼쳐져 있어서 북쪽 정상에서 남쪽 정상 쪽을 바라보면 마치 조물주가 신비의 카펫을 만들어 깔아 놓은 듯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장관은 산 밑에 있는 사람은 결코 볼 수 없다. 땀을 흘리면서 산 정상까지 올라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창조주의 선물>인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등산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기로 했다. 즉 “낮은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라고.




몇 일전 한 모임에서 우연히 자리한 곳이 20대 후반의 입사 2년차 젊은이들 사이였다. 안면 있는 사람도 있었고 취업을 축하해 줬던 사람도 있었다. 초년 직장인들의 애환과 호기심 깔린 경험담을 즐기던 중, 대화의 방향이 그들 자신의 정체성과 혼돈상태에 관한 상담 분위기로 흘렀다. 즉 그들은
<내가 과연 옳게 일을 하고 있는지?>
<내가 하는 일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지?>
<입사 동기들이 왜 퇴사를 하며 나는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건지?> <선배들과 임원은 왜 우리를 심하게 압박하는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등과 같은 공통적 번민을 안고 있었고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시선 속에서는 직장생활을 오래 해봤으니 답을 내놔보라는 압박 같은 부담이 전해졌다. 몇 가지 단편적인 이야기를 나눠봤으나 해법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등산에 비유해 보자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했다.



입사2년차는 여러 개의 등산로 중 하나를 선택해서 2부 능선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4부 능선까지는 가까운 주변만 보이기 때문에 시야는 답답하고 숨이 차며 힘들어서 등산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모든 산은 힘들고 답답한 곳을 통과해야 숨을 돌리면서 주위를 관망할 수 있는 언덕이 나타난다.
아마도 5부 능선은 올라가야 이런 언덕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그 언덕에서는 산의 윤곽과 산 아래 풍경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고, 나머지 정상까지 갈 길을 가늠하게 한다. 6부 능선과 7부 능선에 다다를수록 더 힘든 코스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시야는 점점 더 넓어져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8부 능선을 넘기는 더 힘들 것이다.
마침내 정상에 오르면 산 아래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다. 고통을 참고 이겨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을 갖게 된다.




직장생활을 등산에 비유할때, 초년 직장인들은 주어진 등산로를 우보(牛步)처럼 걷는 것이다. 쉴 수 있는 언덕과 정상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위해 차근차근 가는 것이다.
선배들은 후배가 힘들어 하는 것을 다 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이(走馬加鞭) 후배들을 단련시키고, 압박을 가하면 어떻게 반응할 것이라는 것도 다 알면서 일을 가르치려고 한다.

초년 직장인들은 지금은 산 아래쪽에서 막 출발했으므로 궁금하고 불확실한 것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지금은 시야가 트이는 곳까지 착실히 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 이상 제가 쓴 글은 독자님들의 의견을 이끌어 내기 위한 유인구 또는 권주가로 생각하시고, 입사 2년차 직장인을 위한 말씀을 덧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