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 연휴에,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나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처럼 한심한 모습은 없을 겁니다.




할 일이 있어 일찍 나오면서 하루 종일 고독해야 할 마음의 준비를 하였는데,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꿈은 깨졌습니다. 함께 일하는 직원이 벌써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30대 초반의 그는, 젊은 시절의 황금 연휴에 가족들과 나들이라도 가지 않고 무슨 궁상을 떨러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골목길로 나갔습니다. 문을 연 식당이 있을까 걱정을 하며 내려 갔는데, 12시간 조금 지난 식당엔 벌써 군데군데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었습니다. 스웨터를 입고, 잠바를 입고, 운동화를 질질 끌고 온 젊은이들이 아주 편하게 보입니다. 물론, 옆에는 소주도 한 병 시켜 놓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조용해야 할 연휴에 웬 사람들이 이렇게 일을 하러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모두들 할 일이 많은가 봅니다. 이들이 모두 사장이고 주인일까 생각해 봅니다. 상사가 나오라고 해서 출근했는지, 해야 할 일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나왔는지, 평소 혼자 하고 싶은 일을 조용히 정리하고 싶어 나왔는지, 월급쟁이라서 밀린 일을 마지못해 하려고 나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새 봄을 맞이하여, 연휴를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해외로 돌아 다니는 시간에, 그래도 할 일이 있는 사람들은 일을 하러 일터로 나옵니다. 할 일이 없어도 일을 만들어 가며, 일뿐만 아니라 공부를 하기 위해 사무실에 나오기도 합니다. 법으로 정해진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고, 개인주의가 팽배하여 자기계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느라 바쁜 젊은이들이라고 한탄하지만, 하는 사람들은 한다는 것을 느끼는 하루였습니다. 누구와 경쟁을 하더라도, 자신과의 싸움을 하면서도,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비법과 묘안(妙案)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휴일에 고독을 파는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26세부터 56년간 단 1분도 낭비하지 않고 살면서, 그런 시간들을 1분도 빼 놓지 않고 기록했다는 러시아의 과학자 류비세프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 게으름과 무식함, 나태함과 나약함으로 얼룩진 정치 지도자(?)들과는 비교하고 싶지도 않은 현실을 생각해 보면서 – 저런 젊은이들이 살아 있는 현실에 함께 존재한다는 걸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하루가 저물어 가는 휴일 저녁, 테헤란로에 서쪽에 비치는 노을은 유난히 밝았습니다. 사무실을 나오며 시동을 거는 마음은, 새벽에 도서관을 나오는 대학생처럼 뿌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