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골퍼' 박정민, 인생역전 꿈꾸다
국가대표 상비군을 반납하고 프로가 됐다. 19세 나이에 한국프로골프(KPGA) 정규 투어에 입성했다. 타이거 우즈가 부럽지 않았다. 빨리 우승해 우즈와 맞짱을 뜨자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우상을 만드는 대신 스스로 우상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해 한 번도 ‘톱10’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손에 쥔 상금은 161만원 남짓. 투어 시드도 날아갔다. 4년간 출전권을 잡지 못하고 ‘야인’ 생활을 했다. 낮에는 비닐공장 막노동, 공원 낙엽 청소, 고깃집 발레파킹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급 1만1000원짜리 아르바이트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힘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골프 레슨을 했다. 올해 5년 만에 투어로 돌아온 ‘중고 신인’ 박정민(24·사진) 얘기다.

“진짜 어이없는 자만이었죠. 사업에 실패한 부모님 대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하루 서너 시간 자기도 힘들었어요.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어요.”

골프는 포기할 수 없었다. 녹초가 돼 돌아온 늦은 밤 맨손으로 빈스윙을 했다. 하루 500번씩. “친한 형들이 출전한 대회 중계방송을 녹화해 보면서 상상으로 경기를 했죠. 나는 저기에 다시 설 것이다. 내가 저기에 서 있다면 나는 어떤 스윙을 해야 할까.”

올 시즌 ‘상상’으로만 돌던 티잉 그라운드에 다시 발을 디뎠다. 10개 대회에 출전해 톱10에 두 번 이름을 올렸다. 지난 7일 개막한 티업·지스윙 메가오픈에서는 첫날 8언더파 공동선두에 올랐다. ‘박정민이 누구야?’라고 갤러리들이 수군댔다.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는데 샷감이 나쁘지 않았어요. 이미지 스윙이 도움이 된 게 아닐까 생각할 뿐이죠.”

골퍼들 사이에 떠도는 한 골프광(狂) 죄수 이야기. 90타대를 치던 그 죄수는 1년간 감옥살이 도중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좋아하는 코스 18홀을 매일 상상으로 돌았다. 출소하자마자 그 코스에서 곧장 79타를 쳤다. 이 믿기 힘든 이야기가 그에게 ‘실제’로 일어난 셈이다.

주말 골퍼를 상대로 한 4년간의 레슨은 되레 그를 깨우쳤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일명 ‘배치기’를 많이 합니다. 다운스윙할 때 배꼽을 앞으로 내미는 배치기를 줄이면 슬라이스가 줄고 훅이 심하면 거꾸로 배치기를 하라고 조언했는데 효과가 컸어요.”

경기 때마다 한 번씩 터져나오는 훅과 슬라이스를 그 배치기의 많고 적음으로 컨트롤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간절하던 투어 복귀를 이뤄낸 그의 다음 목표는 뭘까.

“우승하면 지난해부터 사귄 여자 친구에게 청혼할 거예요. 가족이 생기면 다들 샷이 좋아지는 형들이 부러웠거든요.”

박정민은 8일 인천 서구 드림파크CC에서 열린 티업·지스윙 메가오픈 둘째 날 4타를 줄여 중간합계 12언더파 공동 10위로 우승 경쟁권을 유지했다. 첫날 8언더파를 친 장이근(24)이 이날도 보기 없이 버디 7개를 쓸어담아 이틀간 합계 15언더파로 선두에 올라섰다.

인천=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