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규제법상 무효 아냐…효율적 자원 배분 위해 누진요금 가능"
"요금정책, 사회상황 반영해 다양"…시민들 "상급심 판단 받겠다"


주택용 전기요금에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시민들이 2014년 8월 처음 소송을 제기한 지 2년 2개월 만에 나온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8단독 정우석 판사는 6일 정모씨 등 17명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정 판사는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주택용 전기요금 약관이 약관규제법상 공정성을 잃을 정도로 무효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은 원고들이 소송의 근거로 삼은 약관규제법 제6조에 한전의 누진제 약관이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약관규제법 조항은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약관 조항은 무효'라는 규정이다.

정 판사는 우선 "지식경제부의 전기요금 산정기준 등에 대한 고시는 전기공급에 소요된 총괄원가를보상하는 수준에서 요금을 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전기사업자의 경영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규제 방식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이는 사회·산업 정책적 요인을 감안하도록 규정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고시에 따르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차등요금, 누진요금 등으로 보완할 수 있다"며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 체계의 근거가 마련돼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주택용 전기요금 약관의 인가 당시 전기요금의 총괄원가가 얼마이고 어떻게 산정됐으며, 이를 토대로 누진구간 및 누진율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알 수 없어 관련 고시의 산정기준을 명백히 위반했는지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도 설명했다.

아울러 "주택용 전기요금 약관은 누진 체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특정 고객에 대하여는 요금계산을 달리하거나 전기요금을 감액하도록 하고, 특정 고객의 선택에 따라 전력요금을 달리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각 나라의 전기요금 정책은 그 나라의 사회적 상황이나 산업구조, 전력설비, 전력 수요 등에 따라 다양하게 정해지고 있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들었다.

결국, 전기요금 누진제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큰 틀 하에서 전기 절약과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필요하다는 한전 측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인강의 곽상언 변호사는 "무척 실망스러운 판결"이라며 "법원의 논리는 전기요금 산정기준이 고시와 규정에 근거가 있다는 것인데, 근거 규정이 있는 것과 약관이 위법이라는 것은 다른 얘기"라고 비판했다.

곽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쟁점에 대한 판단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바로 항소해 상급심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전국적으로 진행 중인 10건의 소송 중 첫 판결이다.

다른 9건의 소송에 영향을 줄지도 관심이다.

이제까지 소송에 참여한 시민은 8천500여 명이다.

한전은 선고 직후 "법원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당정 전기요금 테스크포스(TF)에서 진행 중인 누진제 개선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환익 한전 사장도 전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현재 누진구간 6단계를 대폭 줄이고, (6단계 구간 간 단가의) 급격한 차이를 개선하겠다"며 올해 겨울 전에 개편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한전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6단계로 나뉘어 있다.

전력 사용량이 많을수록 요금 단가가 비싸지는 구조로, 처음 100킬로와트시(kWh)까지는 kWh당 전력량 요금이 60.7원이지만, 500kWh를 초과하는 6단계에 들어서면 709.5원으로 11.7배가 뛴다.

반면 우리나라 전기 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에는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s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