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일본 로펌끼리 '합종연횡'…시장개방 충격 줄였다
일본은 18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법률시장을 개방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른 미국과 영국 등 유럽연합(EU) 국가의 압력에 의한 것이다. 일본 정부와 일본변호사연합회는 “법률시장 개방은 변호사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마지못해 조금씩 문을 열었다. 그러다 결국 2005년 4월 로펌 간 합병이나 일본 변호사 고용 등에 붙어 있던 모든 제약 조건을 없애 법률시장을 100% 열어젖혔다. 그로부터 꼭 11년. 시장 개방의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찾은 일본에선 시장 잠식 등 부정적인 목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오히려 토종 로펌들은 외부 충격에 대응하느라 덩치를 키우면서 경쟁력이 높아졌다. 외국 로펌도 해외 투자 등 틈새시장에 진출해 전체적으로 일본 법률서비스 시장의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합병으로 경쟁력 키워

변호사가 300명이 넘는 일본의 1~5대 대형 로펌은 모두 토종이다. 하나같이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웠다. 법률시장 개방을 전후해 외국 로펌에 대한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 주된 명분이었다.

변호사 숫자가 500명이 넘는 ‘넘버1’ 니시무라&아사히 법률사무소는 2004년과 2007년 두 차례 합병을 거치면서 개방 이전(2003년 1월 127명)에 비해 네 배 이상으로 커졌고, ‘넘버2’ 앤더슨 모리&도모쓰네 법률사무소도 2005년 앤더슨모리 법률사무소(2003년 1월 111명)와 도모쓰네 법률사무소를 합치는 등 몸집을 계속 키웠다. 중소 로펌이던 TMI종합법률사무소는 영국 시몬스&시몬스(2001년), 캐나다 웨이클리(2006년), 독일 아키스(2009년) 등과 합쳐 서열 3위까지 급성장했다.

2005년 법률시장 개방 초기에는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세계 5위(변호사 2000명)였던 영국계 링클레이터스가 일본 국내 서열 6위 미쓰이야스다 법률사무소(변호사 약 80명)의 국제업무담당 변호사를 빼내가면서 사무소가 공중분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후 악몽은 더 이상 재연되지 않았다. 시로야마 앤더슨 모리&도모쓰네 변호사는 “외국 로펌은 당연히 경쟁 상대이긴 하지만 국내 로펌에 노하우나 경험이 축적돼 있기 때문에 밀린다는 느낌은 없다”며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에 수반되는 업무 비율이 최근 증가했지만 전통적으로는 비중이 높지 않아 외국 로펌이 들어왔다고 해도 기존 일이 많이 줄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외국 로펌의 다수는 일본 변호사

1987년 처음 문을 열자 28명의 외국 변호사가 일본으로 들어왔다. 이후 시장 완전 개방 직전인 2004년에는 231명, 지금은 380명까지 늘었다. 이는 일본 내 전체 변호사(3만6400여명)의 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외국 로펌들은 법률시장이 완전 개방된 2005년 4월부터 아무런 제약 없이 일본 로펌과 합병하거나 일본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다. 변호사 숫자 기준 10위권 내에는 미국계 베이커&매켄지 한 개뿐이지만 20위권 이내에선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외국 로펌의 일본 진출이 활발한 편이다.

주목할 점은 외국 로펌 내 일본 변호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베이커&매켄지의 일본 변호사는 108명인 데 비해 외국법사무변호사는 19명에 불과하다. 영국계 클리포드챈스는 2005년경에는 절반 이상이 외국변호사였지만 지금은 50여명 중 60%정도가 일본 변호사다. 이 로펌의 오카모토 마사유키 변호사는 “국경을 뛰어넘는 거래에 있어 외국법과 일본법 양쪽에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고 일본 의뢰인들은 일본어로 소통하고 싶어해 일본 변호사 수요가 늘고있다”고 설명했다.

앤더슨 모리&도모쓰네 법률사무소 등에서 근무하기도 한 김윤희 변호사(사법연수원 32기·법무법인 세종)는 한국 역시 토종 로펌이 시장 주도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 변호사는 “한국 로펌이 이미 대형화돼 있고, 한국 기업들이 외국 로펌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개방이어서 현재 일본과 같은 양상을 보일 것”이라며 “시장 개방이 청년 변호사에게는 취업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