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銀 사태보다 심각한 '교수공제회 사기'  4대 의혹
퇴직 후 목돈을 미끼로 대학 교수들에게 연금상품을 팔아온 전국교수공제회 총괄이사의 횡령사건이 한국 교수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공제회에 가입한 교수만 국내 전체 교수 4만여명의 10%에 해당하는 4500명에 이른다. 공제회가 교수들에게 지급해야 할 돈은 3000억원에 달하지만 횡령 등으로 공제회의 남은 자산은 1500억원(공제회 추산 20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초기만 해도 신분노출을 꺼리던 공제회 가입 교수들이 4일 강의를 뒤로 한 채 서울 능동 공제회로 모여들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공제회를 파산시켜 원금의 일부라도 건질지, 전문경영인을 두고 회생절차를 밟을지 갑론을박을 벌였다.

‘은행이자 두 배, 목돈 보장’이라는 유사수신행위업체들의 광고 전단지 같은 유혹에 대학 강단에 평생을 몸담아온 한국의 엘리트 집단이 속아넘어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저축銀 사태보다 심각한 '교수공제회 사기'  4대 의혹
○서울 수도권 126개대 교수 가입


이날 전국교수공제회관에는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전·현직 교수 100여명이 모였다. 피해를 본 교수 중에는 서울 시내 57개 대학을 비롯, 수도권 126개 대학 교수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급여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방대 교수가 노후보장을 위해 많이 가입했을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서울대 100여명 등 SKY대에만 300여명이 피해를 입었다.

이들은 공제회의 치밀한 영업 방법에 꼼짝없이 당했다. 공제회는 우선 매달 발행하는 전국교수공제회 월보를 전국 4만여명의 전임교수들에게 모두 보냈다. 이들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달 18일에도 월보를 발행하고 154명의 교수에게 ‘퇴직안정지원금’을 지급했다고 홍보했다. 또 “보유자산이 4조원이며, 올 상반기 2371억원의 운용수익을 냈다”고 교수들을 안심시켰다.

이들은 각 대학 홈페이지를 통해 교수 명단을 알아냈다. 달력, 소식지 등을 주기적으로 보내면서 공제회가 마치 정부의 공식 기관인 것처럼 알렸다. 공제회 관계자는 “내부 직원조차 미인가 단체인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매학기 신임 교수 명단이 발표되면 해당자에게 공문, 공제회 소개서, 월보 등을 배달했다.

공제회에 10억원 이상을 맡긴 교수는 10명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6억원을 맡겼다는 C교수는 “전 재산을 넣었는데 절반이나 돌려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분노했다.

○건설사와 재판 중 횡령 들통

공제회는 1998년에 설립됐다. 1971년 법률에 의해 설립된 한국교직원 공제회를 모방한 단체다. 교수사회에서 명망가로 알려진 수도권 대학의 전직 총장을 지낸 주모씨(79)가 회장으로 내세워졌다.

공제회는 지난 6월 회원들에게 보낸 공문에서 자신들의 총 자산이 4조2115억원이라고 소개했다. 독일과 브라질에 있는 부동산에 과감히 집중 투자해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고 홍보했다.

공제회는 지난 14년 동안 교수들 돈 3232억원을 수탁해 만기가 도래한 회원들에게는 정상적으로 연금과 목돈 수탁액을 지급했다. 예컨대 15만4000원을 10년 동안 납입한 B교수에게는 지난 5월부터 정년 퇴직 후 매년 50만원씩 돌려줬다.

또 전국 각 대학의 전임 총장을 이사진으로 영입했다. 명망 인사들로 교수사회의 신뢰를 쌓은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침체로 공제회관 건물 시공을 담당했던 T 건설사와 공사비를 두고 법적분쟁이 일어나면서 이씨의 횡령 사실이 드러났다. 재판 도중에 공제회의 비리 사실이 법조계 안팎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T 건설사와 법적 분쟁이 아니었으면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금융위기로 재정악화

공제회는 부동산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많은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4100만원을 내면 3년 뒤에 5000만원을 돌려주는 ‘목돈수탁’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회원들에게 돌려줄 돈이 바닥나자 나온 궁여지책이었다. 고금리의 후순위 투자금으로 앞사람의 원금을 챙겨주는 전형적인 ‘폰지사기’였다.

높은 이자율에 사기를 의심하는 교수들이 문의를 하면 “어느 독지가의 기부로 사둔 부동산 재산이 상당하다. 이자를 지급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이유를 대고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 교수공제회를 통해 3억원 이상을 넣은 교수는 250여명에 달한다. 목돈수탁 피해자는 2000명이 넘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