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서울 도심에 또 하나의 시민 휴식공간으로 등장한 광화문 광장이 개장 3일 만에 시위꾼들의 정치집회의 장으로 변질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칫하다간 각종 정치집회로 얼룩진 서울광장과 청계천광장의 재판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일 오전 11시께 참여연대,문화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20여명은 광장 한복판에 모여 마이크를 이용해 시위를 벌였고 경찰이 이들을 연행하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음향장비를 들고 온 이들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치집회를 불허하는 광화문광장 조례안을 폐지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정권은 짧고 광장은 영원하다" "광장은 민주사회의 심장"이라는 등이 적힌 피켓을 흔들며 30분간 광장 한복판을 점거했다. 광장을 정치투쟁의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이들 단체는 "광화문광장에서 사실상 집회와 시위가 금지되고,광장을 사용하려면 서울시와 서울지방경찰청의 이중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광화문 광장은 닫힌 공간"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집회를 갖자 경찰은 세 차례에 걸쳐 해산을 요구했다. 경찰은 "2명 이상의 집단이 피켓을 들고 10분 이상 서 있는 것은 명백히 불법집회"라고 통보했다. 해산통보에도 불구하고 시위자들의 구호가 이어지자 경찰은 진압에 나서 시위자 20여명 중 10명을 연행했다. 경찰이 이들을 연행하자 광화문 광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시위자와 경찰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연행에 항의하던 시위대들 사이에선 욕설이 터져 나왔다.

주말을 피해 한가롭게 광화문광장을 구경하던 5000여명의 시민들은 진압이 시작되자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대낮 충돌을 본 시민들은 "시민의 광장에서 왜 또 정치집회를 벌이느냐"며 시위대에 강하게 항의했다. 이날 손자들과 함께 온 서준영씨(74)는 "광장에서 매일 싸우는 모습만 보여줘 손자에게 민망하다"며 "이러다 여기도 서울광장처럼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경민씨(35)는 "도심 한복판에 시위가 없는 조용한 공간 하나 정도는 필요한 것 아니냐"며 "자율로 안 되면 법으로라도 집회를 못 열게 해 시민들이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시위대를 비난했다. 초등학생인 딸과 구경 나온 주부 이영희씨(37)는 "광화문광장은 진짜 시내 한복판이기 때문에 시위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시위전용 광장을 외곽에 따로 마련해 주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꼬집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또 다른 주부는 "광화문만큼은 시위 프리존으로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광화문 광장에서 정치집회가 열린다면 도심교통은 그야말로 지옥이 된다"면서 "시위집회 금지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재철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