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개표와 집계에 사용할 목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전자개표기를 도입했던 필리핀 정부가 현지업체의 입찰절차상 하자를 문제삼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를 사용치 못하게 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에 따라 필리핀 정부가 1천만달러를 들여 도입한 1천991대의 전자개표기는 당분간 무용지물이 됐으며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는 내달 10일 실시될 대통령선거와상.하원 선거의 개표와 집계를 예전과 마찬가지로 수작업으로 진행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필리핀 대법원은 지난 1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필리핀 정보기술재단과 이단체 회원 8명이 지난해 11월 선관위와 전자개표집계시스템 구축사업을 낙찰받았던메가 퍼시픽 컨소시엄 등을 상대로 낸 입찰무효 행정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해 4월 내린 전자개표집계시스템 구축 사업자 선정 결정은 무효이며 재입찰을 실시해야 한다고 판결하고 선관위가 자체적으로 정한 입찰규칙을 위반한 절차상 하자가 인정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선관위가 거액의 입찰을 실시하면서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서둘렀고 필요한 재정적, 기술적, 법률적 규정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선관위가 지난해 3월 입찰업체들을 상대로 시험을 실시했을 때 99.9995% 이상의 개표 정확도, 집계결과 이중입력 방지기능, 개표 집계결과의 감시추적 상황 출력 기능, 해당분야 납품경험 등 선관위가 내건 요구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메가 퍼시픽 컨소시엄을 낙찰자로 선정한 것은 위법하다고 법원은 판시했다. 이 재판의 판결문 전문은 필리핀 대법원 홈페이지(http://www.supremecourt.gov.ph/2004/jan2004/159139.htm)에 공개돼 있다. 메가 퍼시픽 컨소시엄은 계약을 따낸 뒤 지난해 10월 우리나라 시스템통합업체SK C&C를 통해 한틀시스템[058420]이 제작한 전자개표기를 수입했으나 이번 판결로이를 사용치 못하게 됐다. 이에 대해 SK C&C 관계자는 "기계 납품은 이미 완료했으며 운영, 시스템구축,입찰 등에는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들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는 사안"이라며 "우리나라 기업들이 전자정부 솔루션 분야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협력사의 절차상 잘못으로 이런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입찰 당시 시험에서 기능상 문제점이 지적됐던 것은 요구사항에 맞추기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고 이는 납품 이전에 모두 해결됐으며 지난해 11월 필리핀 과학기술부도 이를 공식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소송은 입찰에서 탈락한 경쟁업체의 항의에 따라 제기된 것으로 안다"며 "다른 나라의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의견을 달 입장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임화섭기자 solat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