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재판장이 판사들과의 합의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선고한 판결이 최근 고등군사법원에서 뒤집힌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군 안팎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21일 국방부에 따르면 고등군사법원(재판장 박주범 대령)은 사격훈련 도중 통제불응을 이유로 병사에게 얼차려를 가해 난청증세를 유발시킨 혐의(업무상 과실치상)로 불구속기소된 박모 대위(33)에게 무죄를 내린 원심판결을 깨고 지난 달 12일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군사재판장이 판결서에 의해 판결하지 않은 채 임의로 무죄를 선고했음이 입증됐다. 원심법원은 군사법원법 제76조를 위반해 판결에 영향을끼쳤다고 보여지므로 원심판결은 파기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76조는 재판장이 재판의 선고를 공판정에서 할 때에는 재판서에 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심을 맡은 박정남 군판사는 "얼차려가 가해질 당시 문 병장의 태도와 소음 노출 정도, 소음측정 치수 등을 근거로 판단한 결과, 피해자의 과실이 인정됨에도 사격장 통제관이 훈련원들의 신체적 안전을 보호해야할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유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박 대위는 지난 99년11월 육군 00사단 중대장으로 근무할 당시 사격훈련 도중문모 병장이 귀 안에 휴지를 넣은 상태에서 호출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문 병장을 사격이 진행되던 M60 총기 옆에 2-3분 가량 꿇어앉히는 얼차려를 가해 양쪽 귀에 '감각신경성 난청상'을 입힌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00사단 인사참모인 김모 중령과 군판사인 정모·김모 법무관 등 3명의 재판부는 1심 선고일인 작년 12월 20일 이전에 이 사건의 유·무죄 여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중령은 '박 대위의 행동은 적법한 지휘권 행사이고, 얼차려로 인한 상해를예견할 수 없었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주장하자 법무관들은 '피해 방지를 위한안전조치를 안했고, 피해가 심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유죄를 고집했다는 것이다. 이후 재판부는 2:1 의견으로 유죄를, 형량은 금고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기로 하고 판결문까지 작성했으나 막상 법정에 들어선 김 중령은 합의결과를 무시한채 일방적으로 무죄를 선고한 뒤 퇴정해 버렸다. 군검찰은 군사법원장이 실정법을 위반해가며 독단적으로 판결을 내리자 사법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1심 판결에 불복해 곧바로 고등법원에 항소해 이번에 2심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군 법무관들은 법률 비전문가인 일반 장교들이 재판에 관여하는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 한 사법체계를 유린하는 사태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며 조속한 제도개선을 촉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한편 박 대위는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요인들이 상존하는 사격장에서 통제를따르지 않은 채 휴지로 귀를 막은 병사에게 지휘관이 얼차려를 준 것은 정당한 지휘권 행사라며 고등군사법원 판결에 불복해 지난 달 중순 대법원에 상고했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ha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