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봉제 확산 ]]

"일한만큼 받는다"

임금제도에 대변혁이 오고 있다.

"실력이 몸값"인 연봉제가 변화의 모티브다.

임금체계만 연봉제로 바뀐게 아니다.

연공서열 상하위계라는 전통적 조직질서이 무너지고 직장문화와 생활양식도
바뀌었다.

인화를 바탕으로한 공동체적 직장문화대신 경쟁적 직장문화가 자리잡은 것.

선후배 동기 모두 동료라기보다는 경쟁자가 돼버렸다.

신입사원도 예외가 아니다.

H기업에 다니는 송모(31)씨는 보너스가 나올때면 친구나 후배들에게 술을
사는 호탕한 성격이었지만 연봉제이후 소심해지기로 했다.

연봉제로 연수입이 일목요연해지고 보너스가 사라져 목돈을 만질 기회가
없어졌기 때문.

퇴근길 소주 한잔 기울일 여유마저 연봉제가 빼앗아버린 것이다.

급여에 맞춰 알뜰구매를 하고 소비규모도 줄었다.

S기업의 전모(38)팀장.

지난해 연봉제를 도입한후 팀원들의 일하는 모습에 큰 변화가 왔다고
말한다.

팀원들은 "일만 보면 반갑다"며 달려들고 시키지도 않은 야근을 밥먹듯
한다.

서로의 퇴근시간에 대해서도 무관심해진지 오래다.

전팀장 자신도 연봉제때문에 고민이다.

아랫사람 보다 자기관리에 더 신경써야할 판.

그는 "중간관리자의 경우 연봉이 크게 깎이지도 않지만 크게 오를 가능성도
적어 오히려 더 눈치가 보인다"고 말한다.

후배들보다 연봉이 적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 이유다.

IMF시대를 맞아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연봉제를 도입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절대과제인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연봉제는
필수가 돼버린 것이다.

30대 그룹의 8백15개 계열사중 1백59개사가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5개사중 1개 꼴이다.

이 가운데 55개사는 올들어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이제 직장인들은 낯선 제도에 "혼란반 걱정반"이다.

IMF로 가뜩이나 어수선한 사무실 분위기가 연봉제로 더욱 삭막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에는 원만한 직장생활과 승진을 위해 능력뿐 아니라 상하관계도
중요했다.

그러나 연봉제는 실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한다.

팀워크나 인화가 엉망이 될수 밖에.

실적주의가 만연하다보니 부하직원의 기획안을 가로채거나 동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일도 생겨났다.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고모(30)씨는 "회의에서 자신이 낸 아이디어가 상사의
것으로 둔갑한 경우도 있다"고 전한다.

외국계 기업인 S사의 김모(29)씨는 "상급자가 쉽고 생색나는 일은 도맡아
처리하면서 자신에게는 어렵고 처음 접해보는 일만 맡긴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나만 살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가 판치고 있는 것.

인사고과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관리자에 대한 과잉충성도 늘었다.

정보통신회사에 다니는 조모(33)대리는 "평소 입바른 소리를 잘하던
사람들이 군소리없이 일만하게 되더라"며 "이게 연봉제의 위력인가
생각됐다"고 말했다.

입사동기끼리도 월급이 천차만별이라 직장인의 영원한 화제인 월급얘기도
꼬리를 감췄다.

연봉제에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직장문화도 생겨나고 있다.

광고회사나 건축회사의 경우 회의시간에 아이디어가 홍수를 이룬다.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면 다음 연봉계약시 반영되기 때문이다.

젊은 사원들은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퇴근후 밤늦게까지 연구하기도 한다.

팀간 경쟁의식이 높아져 작은 일이라도 성과에 계산되는 일이라면
저돌적으로 달려든다.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거나 어학테이프를 듣고 퇴근후 학원에 다니는 등
자기계발에 열심이다.

연봉제는 분명 거역할 수 없는 큰 흐름이다.

하지만 아직 연봉제를 정착시키기엔 과제가 많다.

우선 평가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

영업직과 달리 객관적인 수치로 실적을 매기기 어려운 사무직의 경우가
그렇다.

그래서인지 국내에서 실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연봉제가 서구식과는 다른
"한국형"이다.

그만큼 이 제도가 정착되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샐러리맨들은 이 과정에서 충격을 흡수하며 새로운 직장문화를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IMF가 회사인간들에게 던져준 숙제이기도 하다

< 양준영 기자 tetriu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