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새없이 울려대는 전화벨소리, 컴퓨터 단말기를 두드리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서로 고함치는 모습들...

불과 몇초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는 딜링룸의 풍경이다.

한국산업은행 15층 외화자금부 딜링룸.

정부당국의 개입으로 원화의 대달러환율이 9백99원대까지 치솟은 10일 이
곳은 긴장감으로 터질듯했다.

통화위기와 경제불안 심리가 작동, 환율이 연중 최고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러니 원화와 외화거래를 맡는 환딜러들은 요즘 신경이 곤두서 있다.

원화가치 불안정으로 하루중에도 환율이 급등락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딜링에 따른 리스크도 크다.

거래 1건당 최고액을 50만달러로 자체 제한하고 있지만 환율변동폭이
10원이면 5백만원의 차액이 왔다갔다한다.

보통 딜러 1명이 하루 90~1백여건 거래하는 점을 감안하면 4억5천만원에서
5억원이 왔다갔다 한다.

"순간의 선택"이 한 회사의 장래를 좌우한다해도 과장이 아니다.

시간과 정보싸움을 해야 하는 딜러들에게는 피가 마르는 일이다.

이처럼 급변하는 외환시장에서 승자가 되기위한 딜러들의 능력은 처절하다.

"Buy low & Sell high(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라는 딜러들의 신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배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딜러들은 매일 잠을 설친다.

뉴욕.런던시장 일단 국내 20여개 일간지는 물론 로이터통신 등 해외뉴스를
일일이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이후 10여분간 자체회의를 갖고 서로 정보와 전망을 교환하고 업무에
들어간다.

오전 12시에 전장이 마감이 됐다고 식사를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거래내역을 일일이 조회해보고 손익을 따지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더욱이 시장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때는 아예 점심을 거를 경우도 많다.

오후장도 마찬가지다.

장이 끝나면 딜러들은 그날 거래에 따른 "성적표"를 받는다.

여기에 적힌 수치가 플러스인가 마이너스인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당연하다.

요즘에는 주고객인 수출 입업자뿐만 아니라 일반시민까지 달러사재기에
나선 바람에 업무량이 크게 늘었다.

환율폭등이 우려되면서 너도나도 환투기에 나선 때문이다.

한마디로 "폭주하는 전화문의에 귀가 짓물릴 정도"이다.

외화자금부 문성진 대리는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여행이나 사업을 하는
친구들로부터 문의를 많이 받았고 여권을 들고 찾아오는 주부들도 많았다"며
"이럴 때일수록 국가경제기반을 확고히 하기위해 저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며 씁쓰레하게 말했다.

<김준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