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전국에서 ‘깡통전세’(전세금이 집값을 웃도는 주택) 주의보가 내려졌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임차인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에게 강제경매를 신청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올 들어 10월까지 전세금을 청구하기 위한 강제경매 신청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증금 떼일라"…깡통주택 경매 17배 폭증

HUG, 강제경매 신청 급증

29일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1~10월 전국에서 HUG가 집주인을 대상으로 신청한 강제경매 건수는 총 500건이다. 매달 약 50건씩 접수된 셈이다. 2020년 같은 기간에는 30건, 지난해에는 362건이었다.

서울에서는 중저가 빌라에 강제경매 신청이 집중됐다. 전체 신청 건수 500건 중 빌라(다세대)가 219건(43.8%)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아파트가 155건(31.0%), 주상복합이 111건(22.2%)을 차지했다.

주로 빌라에서 깡통전세 피해가 발생하는 이유는 아파트에 비해 시장 상황에 따른 가격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과 같은 집값 조정기에 가격 하락폭이 더 가파르다는 의미다. 정확한 시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신축 빌라는 시세에 비해 부풀려진 전세 보증금으로 임대차 계약이 체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올 들어 집값 하락폭이 커지는 가운데 매매가와 전셋값 격차가 줄어들면서 깡통전세 피해가 늘고 있다”며 “서울 서부권과 인천에서 강제경매로 경매시장에 나오는 물건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직접 경매 신청 나서는 임차인들

깡통전세 피해 우려가 커지면서 임차인이 직접 경매 신청에 나서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W빌라 전용면적 29㎡에 거주하던 임차인 A씨는 집주인에게 전세금(2억7400만원)을 청구하기 위해 강제경매를 신청했다. 이 빌라는 한 차례 유찰된 뒤 이달 초 감정평가액(2억9500만원)보다 3000만원 낮은 2억6500만원에 매각됐다. 청구액과 매각가의 차액인 900만원은 매수인이 지불하게 됐다.

실제로 개인이 직접 강제경매를 신청하는 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강제경매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채무자에게 지급명령이 송달돼야 한다. HUG는 공시 송달(송달 서류를 게시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을 이용할 수 있지만, 개인은 송달에 필요한 주소 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집주인이 고의로 송달을 피하는 경우도 많다.

부동산 거래절벽의 여파가 경매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낙찰률이 떨어지는 것도 부담이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 H빌라 전용 25㎡는 올해 8월 감정가 1억4900만원에 경매시장에 나왔지만 세 차례 유찰됐다. 결국 임차인이 8500만원에 직접 사들였다. 낙찰가가 청구한 액수(전세금)보다 낮아질 수 있어 재산권을 방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접 주택을 매수한 것이다.

임차인이 불가피하게 주택을 구입하게 될 경우 다른 주택을 매수할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 유주택자가 되면 신축 아파트 청약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외견상 드러나는 강제경매 건수보다 실제 피해 규모가 더 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HUG와 임차인 외에도 서울보증보험, 주택금융공사 등 강제경매를 신청할 수 있는 주체가 더 있어서다. 선순위 채권이 설정돼 있거나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이 소액이라 대응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전문가들은 강제경매 신청이 내년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윤수민 농협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집값 하락 현상이 본격화하고 낙폭이 커질수록 강제경매 물건이 늘어나는 양상을 보인다”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깡통전세를 대상으로 하는 강제경매 물건이 지속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