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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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아파트는 동경과 우려의 시선을 한꺼번에 받는다. 지역 내 랜드마크 시설이다보니 시세를 리딩하지만, 화재나 각종 사고에 있어서는 취약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안전을 위해 각종 안전설비를 강요하기도 어렵다. 국내에서는 49층 이하의 준초고층(30층 이상 49층 이하)에 대해서는 별도의 피난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는 초고층 아파트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뉴욕 트럼프타워에 7일(현지시간) 오후 화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58층인 이 건물에서의 사고로 떠오른 문제점은 '스프링클러'였다. 트럼프타워가 문을 열었던 1984년에 스프링클러는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장치가 아니었다. 스프링클러 설치는 1999년에야 의무화됐다.

국내에서도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 고층 건축물들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화재 등 안전 관리는 여전히 소홀한 게 현실이다. 국내에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축물은 103개동으로 나타났다. 31층부터 49층 사이의 건축물은 전년대비 16%가 늘어난 1809동으로 조사됐다. 인허가된 건물까지 합하면 앞으로 초고층 건물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나온 ‘2017년 고층건축물 소방특별조사 실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국 30층 이상 고층건축물 2315개 중 14%에 달하는 326개가 화재 대비 불량이었다. 30층이상 아파트 1839개 중 화재 대비 불량인 아파트는 231개로 13%나 됐다.

화재가 일단 발생했다면 찾게 되는 곳은 피난안전구역이다. 피난·안전을 위해 건축물 중간층에 설치하는 대피공간이다. 이 구역의 마감재는 불연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내부에는 일반적으로 안전용품과 인명구조기구, 식수 등이 구비된다. 화재나 비상상황이 생길 경우 건물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피난안전구역으로 대피해서 구조를 기다리면 되기 때문에 재난 상황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할 수 있다.

이러한 피난안전구역은 건축법 개정 시행령에 따르면 50층 이상, 높이 200m 이상의 ‘초고층 건축물’에 30개층 마다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30층 이상 49층 이하 또는 높이 120m 이상 200m 미만인 ‘준초고층 건축물’의 경우는 폭 1.5m 이상 직통 계단을 설치하면 피난안전구역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조항을 뒀다. 다시말해 피난안전구역 설치 의무가 없다.

그럼에도 주택 수요자들의 ‘안전’ 경각심이 높아짐에 따라 준초고층 단지에도 피난안전구역이 들어서고 있다. 법적 의무가 없는 준초고층(30층 이상 49층 이하) 아파트에 별도의 피난층인 피난안전구역이 설치되고 있다는 얘기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각 동마다 일부 공간을 피난안전구역으로 설계해 재난 시 입주민 안전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연내에도 피난안전구역을 적용한 초고층 아파트들이 공급된다. 대우건설은 오는 5월 수원 대유평지구(구 KT&G부지)에서 ‘화서역 파크 푸르지오’를 공급한다. 최고 46층, 전용면적 59~149㎡, 아파트 14개동, 2355가구 규모다. 각동 25층에 2~3가구씩 피난안전구역이 조성될 예정이다.

한화건설은 전북 익산시 부송동 1102번지에서 ‘익산 부송 꿈에그린’을 분양할 예정이다. 지하 3층~지상 최고 38층, 4개동, 전용면적 59~135㎡, 총 626가구 규모로 익산 최고층 복합단지다. 각 동 24층에 피난안전구역을 설치하고, 각 동·세대마다 하향식 피난구를 설치해 입주민의 안전을 챙겼다. 또한 지진규모 6.0을 견디는 내진설계가 적용된다.

한국토지신탁은 대전 중구 오류동 170-15번지 일대에서 ‘서대전역 코아루 써밋’을 분양 중이다. 최고 32층으로 조성되는 이 단지 14층에는 피난안전층이 마련됐다. 단지는 지하 5층~32층, 1개동으로 이중 5~32층에 조성되는 아파트는 전용면적 59~63㎡, 총 154가구로 이뤄진다.

업계 전문가는 “고층 아파트의 경우 조망권, 일조권이 우수하고 랜드마크 효과가 크다는 장점으로 분양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반면, 안전을 이유로 기피하는 수요자들도 있다”며 “최근에는 피난안전구역을 마련하는 등 건설사들도 안전설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