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인도 대사, 아리랑TV '더 디플로맷' 출연
인도 시각으로 본 남북 정전협정과 포로들의 중립국행
아리랑TV는 오는 27일 오후 8시 외교 전문 프로그램 '더 디플로맷'(The Diplomat)에 스리프리야 랑가나탄 주한 인도 대사가 출연해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극적 타결과 뒷이야기를 들려준다고 24일 예고했다.

인도는 당시 중립국포로송환위원회 의장국이었다.

랑가나탄 대사는 "인도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유엔 안보리에 휴전을 제안하려 노력했지만, 유엔의 영구 회원국이 아니어서 제안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확전을 염려한 아시아·아프리카 13개국과 함께 1950년 12월 12일 유엔총회에 한국전쟁 정전의 기초 조건을 조사하기 위한 정전 3인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결의안을 제출해 유엔총회에서 결의 제384호로 채택됐지만 소련과 중공의 반대로 무산됐다"며 인도가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최초 제안자였다고 설명했다.

전쟁 발발 약 1년 뒤인 1951년 7월 10일, 휴전회담 본회의가 개성에서 최초로 열렸지만 시작부터 난항에 부닥친다.

남과 북 사이에 새로운 경계선을 어디로 할 것인가부터 전쟁이 더는 일어나지 않도록 중립국으로 구성된 감시 기구에 어떤 국가들을 참여시킬 것인가까지. 그런데 예상 밖으로 더 큰 논쟁이 된 것은 전쟁포로 문제였다.

전쟁이 끝나거나 중단돼도 원래 자기의 진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포로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그로 인해 정전협상은 1952년 11월 초까지 난항을 거듭했는데, 그때 인도가 해결책을 제시한다.

랑가나탄 대사는 "유엔 인도 대표가 유엔 총회에서 정전 이후 60일 이내에 전쟁포로들의 최종 송환을 결정하는 위원회의 설립을 제안해 유엔총회에서 1952년 12월 3일 만장일치로 채택됐다"며 인도가 중립국포로송환위원회 설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인도가 위원회 의장국으로 선출된 배경에 대해 "당시 인도는 냉전 갈등에 속해 있던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인도의 반식민지 투쟁과 이데올로기가 존중받을 수 있었다.

또 분쟁을 종식하는 것 외에 인도가 취할 이득이 없다는 이유로 인도가 의장국으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위원회 관리하에 총 7만 7천596명의 포로송환이 이뤄진다.

그런데 자국송환을 거부하고 중립국행을 고집한 88명의 전쟁포로(북한군 74명, 중공군 12명, 한국군 2명)에 대한 처리 문제로 교전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랑가나탄 대사는 "가장 어려운 과제는 중립국행을 택한 88명의 전쟁포로에 대한 설득작업에 총력전을 기울이는 교전 양측의 질서를 유지하며 불안감에 휩싸인 88명을 안정시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자국송환을 끝까지 거부한 88명은 중립국으로 향할 수 있게 됐지만, 그들을 반기는 나라는 없어 결국 인도가 그들을 수용했다.

랑가나탄 대사는 "88명의 포로 중 9명의 전쟁포로가 인도에 잔류하였고, 나머지는 브라질 등 남미행을 결정했다"면서 "인도에 남기로 결정한 이들은 인도의 지원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했으며, 사업가와 농부, 사진사 등으로 정착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