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개헌 갈등에 파행 > 여야가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연장 문제를 놓고 대립하면서 12월 임시국회는 법안을 한 건도 처리하지 못한 채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은 국회 정문에서 국회의사당을 바라본 모습. 연합뉴스
< 국회, 개헌 갈등에 파행 > 여야가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연장 문제를 놓고 대립하면서 12월 임시국회는 법안을 한 건도 처리하지 못한 채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은 국회 정문에서 국회의사당을 바라본 모습. 연합뉴스
제헌헌법이 탄생한 1948년 한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경제는 공식 집계조차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한국은행이 공식 집계를 시작한 1953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67달러. 당시 산업에서 농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8%에 달했다. 2016년 농어업 비중이 2%인 점을 감안하면 제헌헌법 당시 대한민국은 가난한 농업국가에 불과했다.

개헌은 정치·시대적 상황뿐 아니라 경제·산업적 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강조한 5차 개헌(1962년)을 기점으로 국민소득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1962년 개헌 당시 1인당 GNI는 91달러였으나 10년 뒤인 1972년 7차 개헌 때는 324달러로 늘었다. 독과점 조항이 신설된 1980년 개헌 당시에는 1686달러로 10년도 채 안 돼 5배가량 증가했다. 9차 개헌 때인 1987년 1인당 GNI는 3467달러를 기록했다. 경제민주화 조항 등이 대폭 강화된 데는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소득 증가와 함께 빈부격차 문제가 본격화된 데 따른 것이었다.

이후 대규모 사업장의 파업 등에도 불구하고 3저(低) 호황과 반도체 호황 등에 힘입어 1994년 1인당 GNI는 1만168달러로 사상 처음으로 1만달러를 돌파했다. 2010년에는 2만2105달러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2만7560달러를 기록한 데 이어 2018년에는 첫 3만달러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이 지난 30년간 사회·경제적으로 비약적으로 도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000달러 시대의 헌법이 대한민국의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변화하고 분화된 시대상을 반영한 개헌 못지않게 경제헌법의 손질이 절실한 이유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