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로 외화난 가중…공포정치로 유일체제는 공고화

5년 전인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은 그의 아들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시대의 개막을 의미했다.

김정일과 비교하면 경험이나 카리스마가 부족했던 당시 20대 후반의 김정은은 권력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신속하게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은 1997년 당 총비서에, 1998년 국방위원장에 취임해 권력승계에 4년이 걸렸지만, 김정은은 김정일 사망 2주 뒤 최고사령관에 추대되고 이듬해 4월에 당 제1비서와 국방위 제1위원장에 추대돼 불과 4개월 만에 절차상의 권력승계를 마무리했다.

◇ 공포통치로 권력 공고화…'김정은 유일체제' 완성
권력기반이 취약했던 김정은은 '공포통치'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첫 표적은 김정일 사망 이후 군부 실세로 꼽히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었다.

김정은은 2012년 7월 리 총참모장을 전격 해임했다.

그의 해임은 김정은의 군 통제 강화 과정에서 비협조적 태도를 취한 데 대한 문책성 인사로 알려졌다.

리 총참모장을 포함해 김정일 장례식 때 영구차를 호위했던 김정각, 김영춘, 우동측 등 '군부 4인방'도 김정은 시대 개막 이후 모두 숙청되거나 일선에서 물러났다.

2013년 12월에는 자신의 고모부이자 김정일의 사망 이후 북한 2인자로 군림하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했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장성택 처형은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김정은 유일체제 구축이 목적이었다.

지난해 4월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재판 절차도 없이 대공화기인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됐고, 올해 7월에는 김용진 내각 부총리가 6·29 최고인민회의 때 불량한 자세로 앉아있던 것이 발단이 돼 보위부 조사를 거쳐 처형됐다.

김정은 집권 이후 처형된 간부는 2012년 3명, 2013년 30여명, 2014년 40여명, 지난해 60여명으로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관계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김정은은 핵심 간부들에 대한 잇단 처형과 숙청, 해임과 좌천 인사 등으로 지난 5년 동안 자신의 권력기반을 확고히 다진 것으로 북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공포통치로 권력을 장악한 김정은은 지난 5월 36년 만에 7차 당 대회를 열고 노동당 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6월 말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4차 회의에선 국무위원장으로 추대됐다.

김정은 유일체제의 완성을 대내외에 선포한 셈이다.

◇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전력투구'…남북관계 '올스톱'
핵·미사일 개발과 북핵 협상 사이에서 줄타기한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집권 5년 동안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올인했다.

김정은 집권 초기인 2012년 2월 미국의 대북 영양지원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동결을 골자로 한 '2·29 북미 합의'가 있었지만, 그해 4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단행해 당시 북미 합의는 백지화됐다.

이에 따라 미국 오바마 행정부 내에선 북한과의 협상을 제안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2·29 합의 백지화 이후로는 북미 회담이나 6자 회담 등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의 장은 마련되지 않았다.

북한도 대외협상보다는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했다.

김정은 시대 5년 동안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로켓) 시험발사를 3차례씩 단행했다.

스커드, 노동, 무수단 등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김정일 집권 18년 동안은 16차례였지만, 김정은 집권 5년 동안은 36차례에 달했다.

올해 들어 핵실험을 두 차례 실시하고 탄도미사일을 22차례 시험발사하는 등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도 파탄 지경에 이르게 됐다.

2014년 남북 고위급 접촉과 지난해 남북 차관급 회담 등 김정은 시대에도 간헐적으로 남북 회담이 있었지만, 올해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로는 남북대화가 전혀 없었다.

특히, 북한의 지난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조치를 취하면서 남북 교류·협력은 완전히 중단됐다.

◇ 국제사회 대북제재 강화…김정은 통치자금 확보 '비상'
김정은 정권이 핵·미사일 도발을 감행할 때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도 강화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3년 1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제재 대상 기관과 개인을 확대한 대북제재 결의 2087호를, 그해 3월에는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응해 '핵ㆍ탄도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의 금융거래 금지'를 골자로 한 결의 2094호를 채택했다.

올해 3월에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따라 북한 화물 검색 의무화, 육·해·공 운송 통제, 북한 광물거래 금지·차단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270호가 채택됐다.

2270호는 김정은 정권의 통치자금을 겨냥해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이외 광범위한 분야로 대북제재를 확대했다는 점에서 '역대 최강' 수위의 제재로 평가됐다.

유엔 안보리는 또한 북한의 5차 핵실험(9월 9일)에 대응해 북한 석탄수출 상한선 설정과 수출 금지 광물 추가 등 2270호의 허점을 보완하는 내용이 담긴 대북제재 결의 2321호를 지난달말 채택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결의로 북한의 외화난이 가중되면서 '김정은 통치자금' 확보에도 비상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신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지난 9월 2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통치자금 확보 루트는 무기 및 광물 수출, 노동당 39호실 계통 수익사업, 각 기관의 상납금 등으로 구성된다"며 "대북제재로 인한 김정은 정권의 통치자금 감소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개략적으로 본다면 통치자금 확보는 당초 수준의 40%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