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통령 핵무기 권한 공유 불가"…전략자산 `재량권 보유' 확고
한미 억제전략위 출범 1년여 "일부 한계에도 상당히 성공적"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지력으로 북한의 목표물 가운데 어디를, 언제, 어떻게 타격할 것인지 두 나라가 공동결정하자고 하지만, 미국은 핵무기 사용에 대해선 대통령이 배타적 권한을 갖고 있다.

'대통령의 핵무기'인 것이다.

이 권한은 공유될 수 없다고 답한다…미국은 유사시 특정 상황에 따른 대응에서 융통성이 제약당하는 것을 꺼린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 특별고문의 최근 기고문 중 한 대목이다.

지난 4월 방한했을 때 한국 정부, 군, 민간 연구원과 전문가, 기업, 언론 등 각계각층을 두루 접촉, 심층 인터뷰를 통해 파악한 한국 내 핵무장론 탐방 보고서 격이지만, 지난해 출범한 한미 억제전략위원회(DSC) 운영 현황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이 들어있다.

DSC 회의에서 한미 간 밀고 당기기 대화를 압축한 이 대목은 미국에 대한 핵우산 공약의 이행을 확고히 보장하는 장치를 최대화하려는 한국의 입장과 핵전력 사용의 재량권이 제약되는 것만은 피하려는 미국의 상반된 입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미국은 지난 2008년 종료된 대한 전시비축물자(WRSA) 프로그램을 운용할 때도 유사시 이 물자 사용에서 재량권이 훼손될 것을 우려, 비축물자 종류와 수량, 이동 상황 등에 대해 한국 측에 구체적인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

한반도 유사시 사용하는 명목의 비축물자였지만, 세계 다른 분쟁 지역에 긴급히 전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 측의 반대에 부닥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도발을 억제하고 공동대응 전략과 계획을 만들고 운용하기 위해 기존의 확장억제정책위원회와 미사일대응능력위원회를 통합해 지난해 4월 DSC를 출범시켰다.

아인혼 전 고문은 탐방 보고서에서 미국의 핵우산 공약에 대한 한국 내 일반 여론의 신뢰를 높일 필요성 외에 정부 차원에서도 한국 측의 불안과 의심을 없애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DSC에서 한미 간 협의 현황을 살펴봤다.

이 보고서는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원자력과학자회보(BAS) 웹사이트에 실렸다.

◇한국 "더 많은 정보와 참여 희망"
DSC에 정통한 한국 측 정책입안자들과 전문가들은 DSC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음에도 "세부적이고 고도로 전문적인" 논의를 통해 큰 진전을 이뤘다며, 예민한 안보문제들을 미국 측과 논의할 수 있는 기구인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일부는 미국이 핵 계획 정보를 한국 측과 공유하거나 확장억지력의 작전계획 작성에 한국을 참여시키는 것에 "적어도 지금까지는" 기대만큼 적극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에 따르면 한국 측이 미국 측에 확장억지력 계획과 작전에 관한 정보를 요청해도 미국 측은 종종 반응이 없다.

미국측은 "걱정하지 말고 우리를 믿어라, 우리가 보호해준다"는 태도인 것 같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 공격을 가해도 미국이 상황에 따라선 정밀유도 미사일과 같은 재래식 무기로 대응하지는 않을까 한국 측은 우려하고 있다고 최 부원장은 말했다.

이에 한국 측은 한미 간 확장억지력 계획과 운용을 나토 수준으로 강화하기를 희망하지만, 미국 측은 나토 모델의 한국 적용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나토 핵 계획그룹(NPG)에선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동맹국들도 미국의 핵무기 계획 작성에 참여한다.

다른 전략분석가들로부터도 유사한 견해들을 들었다.

이들의 "최대 불만"은 미국이 DSC에서 정보를 충분히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사시 미국 전략자산들의 한국 재배 계획이나 핵무기 사용 계획 등에 관한 것이다.

한국 측은 또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동 작전계획 수립 참여도 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 내 목표물 선정에 한국 측 의견을 반영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 관계자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더욱 진전돼 미국 영토가 북한의 핵 공격 위협에 노출될 때 이로 인해 미국이 한국 방어에 나서길 꺼리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미국의 핵 탑재 가능 항공기의 한국 배치, 유사시 미국 핵무기의 한반도 반입을 위한 계획 수립, 심지어는 미국 핵무기의 한국 영구 배치 등의 확장억지력 강화책를 검토할 것을 원하고 있다.

중간급 전문가들뿐 아니라 전·현직 군 고위층도 조심스러운 어투이긴 하지만 이들의 견해에 동의했다.

확장억지력 문제에 정통한 한국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미국이 공개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확장억지력 작전계획에 대해서조차 아직 한국 측에 브리핑하지 않았다며 "(미국이) 좀 더 투명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 퇴역 장성은 확장억지력에 관한 한미 간 협의 내용을 잘 아는 사람들은 안심하고 있지만 많은 한국인은 "미국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더 많은 증거를 원한다"고 말했다.

◇미국 "우려와 희망은 알지만, 핵무기는 대통령의 배타적 권한이라서…"
이미 미국은 핵우산 제공에 관해 다른 어떤 동맹국보다 한국과 더 세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DSC에 정통한 미국 관리들은 말했다.

그러나 한국 측은 온갖 비상 상황을 상정한 각각의 세부 작전계획을 공동수립하는 선까지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미국 관리는 "DSC에서 한국 측이 나토 핵 계획그룹 모델을 요구하면 우리는 그 그룹의 역할이 부풀려져 알려졌다고 말해주지만, 한국 측은 우리의 설명을 믿지 않고 계속 양자 간 공동계획 수립 기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현직 미국 관리들은 양자 간 확장억지력 협의 수준에 한국 측이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 내 어떤 목표물을 언제, 어떻게 타격할 것인가에 관해 한국 측은 공동결정을 원하지만, 미국 측은 "대통령의 핵무기"인 만큼, 그 사용 권한의 '공유 불가' 원칙은 훼손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측은 온갖 비상 상황 각각에 따른 대응 계획을 한미 간 합의해두자고 하지만, 미국으로선 각 경우의 특정한 상황에 맞춤 대응할 수 있는 융통성이 제약받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아인혼 "한국의 역할 증대 요청을 적절히 수용하는 방안 찾아야"
아인혼 전 고문은 DSC 협의에 관한 이러한 "일부 한계와 다소 다른 접근법"에도 불구하고, DSC는 한국 측 정책입안자들과 전문가들에게 미국의 핵우산 작전 정보를 제공하고 한미 연합 억지력 형성에 한국 측 입장을 더 많이 반영하는 점에서 "상당히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과거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핵 억지를 미국에 맡겨뒀지만, 이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전략가들 사이에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있다"고 한국 측의 변화에 상응하는 미국 측의 대응을 주문했다.

"미국,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에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계속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데 신물 난" 한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이 더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늘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진전될수록 핵 억지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한국 측의 욕구도 커질 것인 만큼, 한국 측의 정보 공유와 결정 참여 요청을 미국 측이 적절히 수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도 물론 "미국 대통령의 핵 특권과 여러 상황에 따른 미국의 융통성 보유"를 전제로 했다.

그는 최소한 미국의 전략자산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고 언제 재배치할 것이냐 하는 문제들에 관해 "궁극적인 결정은 미국이 하더라도 효과적인 억지력 확보를 위한 최선의 방안을 찾는 데는 한국 측 입장을 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핵무장론에 대한 한국 재계 여론
아인혼 전 고문의 보고서엔 핵무장론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논란에 대해 공개 언급을 꺼리는 한국 경제계의 속내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한 소기업 소유주와 몇몇 대기업과 재벌들의 미래 지도자들"은 한국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가동할 경우 "정치적으로, 그리고 특히 경제적으로 매우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재벌과 기타 대기업들은 핵무장에 반대한다"고 아인혼 고문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들은 미국의 대한 안보공약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한국으로선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것 외엔 다른 선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대재벌 회장(head)"은 핵무장론이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제어토록 설득하는 정치적 효용성이 있다고 보면서도 중국 측의 반응에 신경을 썼다.

한국 재계 사람들은 사드에 관한 중국 측의 발언이 한국 증시와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한 중소기업 회장은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이점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면서 잠재적 핵 보유 능력을 가진 것으로 충분한 억지력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y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