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관광 명소 '예수상' 구경하고 경기장서 북한 선수 응원
브라질 대통령 권한대행 회동 조선중앙방송 보도는 '사실무근'


북한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열리는 브라질에서 활발한 스포츠외교를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응원과 관광 등으로 대부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 부위원장이 미셰우 테메르 임시대통령 등 브라질 고위 인사들과 환담했다는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올림픽 취재단이 리우에서 엿새를 보낸 최 부위원장 일행의 동선을 추적한 결과 이들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행사장 참석과 경기장 응원, 관광 등으로 주요 일정을 소화했다.

스포츠 외교는 거의 실종된 형국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오전 8시께 리우에 도착한 최 부위원장은 당초 IOC가 북한에 배정한 것으로 알려진 시내 W 호텔이 아닌 시 외곽 S 호텔을 잡아 9일까지 투숙했다.

연합뉴스 취재진이 이날 찾아간 S 호텔 고객 명부에는 최 부위원장과 권성철 전 쿠바 대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호텔 조식 명부에도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발견됐다.

이들은 인접한 2개 객실에 여장을 풀었다.

최 부위원장은 전날인 8일 탁구경기장에서 북한 김송이 선수를 응원한 데 이어 세계적인 관광 명소인 해변 예수상을 구경했다.

최 부위원장은 김철학 브라질 주재 북한 대사 등 5명과 함께 예수상 앞에서 뒷짐을 진 자세로 외국인 사이에서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 듯했다.

이 모습은 브라질 교민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대부분 관광객이 평상복이나 운동화를 착용하는 데 반해 이들은 검은색 양복 차림에 구두를 신었다.

일부는 IOC 신분 카드를 목에 걸어 쉽게 눈에 띄었다.

최 부위원장은 지난 7일 리우 센트루 파빌리온2 경기장에서 북한 '역도 영웅' 엄윤철(25) 선수를 응원했다.

북한의 장웅 IOC 위원도 그 자리에 있었다.

최 부위원장은 리우에 도착한 첫날 저녁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주최한 호텔 만찬에서 각국 IOC 위원 및 정상급 대표들과 악수하면서 담소를 나눴다.

이곳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잔니 지오반니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도 보였다.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만찬장에서 수많은 손님들과 가볍게 악수하면서 의례적인 인사를 했으나 깊이 있는 대화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 부위원장이 만찬 다음날인 5일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 권한대행과 회동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7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김정은 동지께서 테메르 임시대통령에게 보내시는 따뜻한 인사를 최룡해 동지가 정중히 전했다"며 "최룡해 동지는 브라질과 친선협조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려는 우리 공화국 정부 입장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테메르 권한대행은 "깊은 사의를 표하고 김정은 각하께 자신의 충심으로 되는 인사를 전해드릴 것을 부탁했다"면서 "브라질 정부가 조선과 친선협조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는 데 대해 강조했다"고 이 방송은 덧붙였다.

연합뉴스가 10일 확인해보니 이 방송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브라질 외교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테메르 대통령 권한대행이나 주제 세하 외교부 장관이 이달 5일 최 부위원장을 만났느냐"는 질문에 "북한에서 부통령급 고위 인사를 파견한 것은 알고 있으나 테메르 권한대행 등과 접촉하지는 않았다"고 단언했다.

최 부위원장이 IOC 만찬장에서 테메르 권한대행과 악수하면서 가볍게 인사한 것을 별도 회동으로 보도했을 수도 있으나 조선중앙통신은 "4일에는 IOC 위원장과 리우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 국제유술연맹 위원장도 만났다"고 밝혀 그럴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이런 허위보도는 북한 권력 서열 2인자가 올림픽이 열리는 서방권 국가를 처음 방문해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상적인 활동을 한다는 점을 선전해 외교·경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를 결의하고 미국이 인권유린 혐의로 김정은 위원장을 제재 대상에 포함하자 이번 올림픽을 스포츠외교 지렛대로 삼을 것이라는 전망이 그동안 국제 외교가 등에서 제기됐다.

실제로 최 부위원장은 브라질 대통령 권한대행 등과 면담하려고 수차례 시도했으며, 그때마다 거절당했다는 소문도 있다.

브라질 외교부는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외교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최 부위원장이 브라질 고위급 인사들을 만나려고 여러 번 제의했다가 거부됐다는 소문의 진위를 알려줄 수 없다.

어떠한 별도 회동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얘기해줄 수 있다"고 밝혔다.

최 부위원장이 11일까지 머무는 이 호텔은 해안과 가까운 고지대의 좁은 2차선 도로 옆에 세워진 곳으로 주변에는 낡은 2~3층 상가와 주택 등이 밀집해 있다.

이곳은 치안이 불안해 정부 의전 대상인 외국 귀빈은 좀처럼 이용하지 않는다고 호텔 관계자가 전했다.

숙박비는 평소 도심 호텔의 절반도 안 되지만 지금은 하루 1천204헤알(약 42만원)로 비싸다.

올림픽을 맞아 각국 선수단과 취재진, 관광객 등이 몰리자 가격을 대폭 올렸기 때문이다.

최 부위원장은 9일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양궁과 다이빙 경기장으로 옮겨 다니며 북한 선수를 응원했다.

호텔 식당 관계자는 "아침 식사 손님이 많아 최 부위원장이 누구인지 모른다.

조식 명부에는 오늘 식사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다.

식당 이용자만 체크하는데 최 부위원장 이름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고 설명했다.

(리우데자네이루 연합뉴스) 황대일 유지호 기자 ha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