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현 국회부의장이 26일 필리버스터를 진행 중인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이 의제에서 벗어났다고 항의하는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석현 국회부의장이 26일 필리버스터를 진행 중인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이 의제에서 벗어났다고 항의하는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테러방지법 처리를 저지하려는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26일 4일째 지속됐다. 테러방지법은 물론 여야 간 무쟁점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는 국회 입법 마비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선거구 획정안 처리도 당초 여야가 합의한 시점을 넘기면서 야당은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필리버스터에 나선 일부 의원들은 테러방지법과 무관한 발언을 쏟아내 이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을 바탕으로 테러방지법을 일부 수정하면 통과에 협조할 뜻을 내비쳤다. 필리버스터 정국의 출구를 찾아 나선 것이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이날 선거대책위원회·비대위 연석회의에서 “테러방지법에 절대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며 “독소조항을 제거해 합의 처리할 수 있도록 여당이 협력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더민주가 주장하는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은 대테러활동에 필요한 경우 통신 감청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한 부칙 내용이다.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는 감청할 수 있는 사유를 ‘국가안보에 우려가 있는 경우’로 제한한 정 의장의 중재안을 언급하며 “우리는 중재안이라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더민주가 필리버스터를 지속하면서도 여론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출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만든 선거구 획정안이 국회에 왔을 때 결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가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려면 필리버스터를 중단해야 한다.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는 이날 밤 국회에서 만나 테러방지법 절충 방안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원 원내대표는 더민주의 테러방지법 수정 요구에 대해 “국가정보원의 권한 남용 방지 장치를 마련하는 등 이미 야당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일부 의원들은 필리버스터에서 의제와 거리가 먼 발언을 해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4일 무제한 토론을 한 은수미 더민주 의원은 “인터넷 포털에 (검색어로) 청년을 넣고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 1위가 알바(아르바이트)일 거라고 추정했는데 ‘글자 수 세기’였다. 회사에 지원하는데 1000자 이내로 (이력서를) 쓰라고 해서 글자 수 세기 프로그램을 돌린다”며 주제와 무관한 얘기를 했다. 국회법 102조는 ‘모든 발언은 의제 외에 미치거나 허가받은 발언의 성질에 반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강기정 더민주 의원은 필리버스터를 끝낸 직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도 했다.

26일엔 필리버스터 발언의 적절성을 두고 여야 간 설전이 벌어졌다. 김경협 더민주 의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국민은 테러방지법을 국민스토킹법, 빅브러더법, 유신부활법, 국민주권강탈법, 아빠따라하기법, 국정원하이패스법 등으로 부르고 있다”며 댓글을 읽어내려갔다.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의제와 관련 없는 내용이라고 지적하자 사회를 보던 이석현 국회부의장(더민주)은 “테러방지법에 대해 국민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소개하는 것으로 관계가 있는 내용”이라고 했다. 조 의원은 의장석 앞까지 나가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안 된다.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인 양 인용해서 발언하고 있다”며 이 부의장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유승호/이태훈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