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美 통해 北에 비핵화 사전조치 요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남북 비핵화 회담을 계기로 형성된 6자 회담 재개 흐름 속에서 한국과 미국의 역할 분담과 공조 방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이 남북대화 후 북미대화를 곧바로 추진, 정부의 3단계 회담 재개방안(남북 비핵화 회담→북미접촉→6자회담 재개) 중 남북ㆍ북미대화가 병행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한미 양국이 서로 보조를 맞추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남북문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 북한이 북미대화에 `올인'하며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빈틈을 없애는 것이 우리 정부의 `발등의 불'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한미 양국은 일단 대응 기조에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발리 회담을 계기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남북 관계의 급진전을 의미하는 `8월 대전환설'까지 나오고 있지만 양국 모두 "급격한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단지 과거 상태로 돌아가려고 길게 끄는 회담을 추구할 생각은 없다"(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부 장관)면서 이런 기대 섞인 전망에 선을 긋고 있다.

6자 회담 재개에 목을 매는 것 같은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않겠다고 양국 정부가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6자 회담 재개 전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중단 등 비핵화 선행조치를 관철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의제와 형식으로 보면 한미 양국이 다소 다른 모습이다.

일단 북미대화는 6자 회담에만 초점을 맞춘 남북대화보다 좀 더 포괄적이란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비핵화 문제 외에 인도적 식량지원 등 북미간 관계개선과 관련된 근본적인 화두도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당국자도 2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북미대화는 비핵화를 주제로 한 남북대화보다 좀 더 이슈를 넓혀서 이야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여기에는 미국이 한국과 달리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다는 상황도 반영돼 있다.

국내 정치상황 등에 따라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의 당사자인 한국은 이 두 문제에 대한 북한의 가시적 태도 변화없이 비핵화 논의만 진전시키거나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런 이유로 북미대화의 형식ㆍ의미도 남북대화와 차별성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지난 24일 클린턴 장관이 직접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방미 일정을 발표, 김 외상의 방문에 힘을 실어준 데 이어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직접대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예비회의"라고 말했다.

북핵 외교가 일각에서는 한미의 투트랙 접근이 서로 맞물리면서 시너지효과를 낼 경우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대화의 무게 중심이 북미대화로 쏠릴 경우 한국이 자칫 외교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우리 정부가 북한에 설명한 `그랜드 바긴'을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기본적 틀로 관철하기 위해 미국을 포함해 6자 회담 참가국을 상대로 한 외교 총력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강병철 기자 solec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