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와 경영계,정부,정치권 등이 참석한 8인 연석회의가 최종 결렬됨에 따라 결국 여야가 복수노조 및 전임자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 나서게 됐다. 어렵게 '12 · 4 합의안'을 도출해낸 노 · 사 · 정 당사자들은 옆으로 밀려나고,정치 논리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마저도 타결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여야가 여전히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 현행법대로 내년 초 전면 실시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학계에서는 "그동안 시행 시기 · 방식 등이 계속 바뀌다보니 산업 현장에서는 거의 준비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전면 실시될 경우 큰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추미애 위원장 중재안 공개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26일 8인 연석회의에 앞서 자신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중재안을 밝혔다. 복수노조는 시행시기를 1년만 유예하고,대신 교섭창구를 단일화하자는 내용이다. 단일화 방식은 노 · 사 · 정 합의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노조들이 자율로 정하고,안될 경우 조합원 과반수인 노조가 대표 노조를 맡는 방식이다.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노조 투표를 통해 교섭대표 노조를 정하기로 했다. 또 이와 별도로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 복수노조의 개별 교섭을 인정하자고 제안했다.

추 위원장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관련해서는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 제도의 도입을 제안했다. 타임오프 제도는 노조 활동업무 중 유급 대상 업무를 정해 그 업무를 수행할 경우에만 사측이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타임오프 범위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심의위원회처럼 별도의 심의위원회에서 정하자고 주장했다.

노동계 대표 위원,재계 대표 위원,공익위원 등이 참석하는 근로시간면제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타임오프 업무 범위와 기업 규모별 상한 범위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또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위반하면 사용자만 처벌하도록 했다. 기존 한나라당 개정안에서는 이를 어길 경우 노사 양측 모두 처벌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견차 좁히기에는 역부족

노사 양측은 즉각 반발했다. 우선 복수노조 시행 후 산별노조 등 초기업노조를 별도의 교섭단위로 인정해 달라는 민주당과 민주노총의 요구에 경영계와 노동부,한나라당이 난색을 보였다. 한국에는 초기업노조에 가입된 노조들이 많은 만큼 초기업노조에 별도의 교섭권을 주면 교섭창구 단일화의 의미가 흐려지고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관련한 노사 양측의 입장차가 컸다. 민주노총은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법으로 막지 말아야 한다"며 노사 자율에 맡기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사측은 타임오프 제도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도 사용자만 처벌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복수노조 허용,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시기를 1년 뒤로 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노동부가 "동시에 실시하면 혼선이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물론 그동안의 협의과정에서 소득도 있었다. 우선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

타임오프 범위를 정하기 위해 '근로시간면제 심의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추 위원장의 제안도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결국 일부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노사 간의 큰 이견차를 좁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논란만 키운 정치권

이날 협상 결렬로 노 · 사 · 정 당사자들은 회의에서 빠지고 대신 여야가 합의를 모색하기로 했다. 환노위는 27일 오후 법안심사소위를 개최했다. 결국 정치권이 키를 쥐게 된 것이다. 노사 관계자들은 "(노 · 사 · 정 합의로) 거의 풀어놓은 문제가 정치권의 개입으로 다시 엉켰다"고 토로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난 4일 한국노총,경총,노동부가 극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냈을 때만 해도 시행 준비에 활기를 띠는 듯했다"며 "하지만 합의안을 존중하겠다던 한나라당이 개정 작업에서 합의안과 달리 타임오프 제도 범위에 '통상적인 노조 관린 업무'를 끼워넣으면서 혼란을 부추겼고,여기에 추 위원장까지 새로운 안을 내놓으면서 논의를 산으로 끌고 갔다"고 비판했다.

대한상의와 경총 등 경제단체들은 "타결을 위한 최선의 방안은 노 · 사 · 정 합의안대로 가는 것"이라며 "정치권이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든 연내에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경봉/구동회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