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피에르 리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교수(사진)는 "동아시아의 정치 · 경제적 협력을 위해서는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8일 말했다.

리먼 교수는 이날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세계경제연구원 초청 강연에서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로 신뢰가 부족해 협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중국과 일본은 과거사에서 비롯된 갈등을 풀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맡아 중국과 일본 간의 긴장을 해소하고 동아시아의 통합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먼 교수는 "경제 발전과 민주화에 성공한 한국은 국제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유럽 국가들도 오랫동안 대립해 왔지만 독일과 프랑스가 화해하면서 유럽 통합을 진전시킬 수 있었다"며 "동아시아 국가들도 역사적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리먼 교수는 "EU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2%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권"이라며 "한 · EU FTA가 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유럽 기업들은 20~30년 전부터 친환경 기술에 투자를 많이 했다"며 "녹색 뉴딜을 추진하는 한국은 유럽에서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현재 유럽연합(EU)은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먼 교수는 "EU의 회원국이 27개국으로 늘어나면서 의사 결정이 늦어지고 회원국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기도 힘들어졌다"며 "EU가 국수주의로 표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 근로자들이 폴란드 출신 근로자의 이민에 반대하고 프랑스 근로자들이 체코에서 생산한 자동차의 수입에 반대한 것 등을 유럽 내 국수주의의 사례로 들었다. 리먼 교수는 1995년 다자주의에 기반한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단체인 에비앙그룹을 창설해 활동하고 있으며 유럽 내 지한파 학자로 꼽힌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