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국회의장이 단단히 화가 났다. 최근 정치권의 '국회 개원 지연'에 대해 작심한 듯 여야를 향해 거침없는 비판을 가했다. 김 의장은 8일 본지 기자와 만나 "이번 주 안에 국회를 열지 않으면 여야 모두 국민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면서 "여야 원내대표가 (국회 개원)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차라리 국회의장에게 국회 소집권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장은 "국회법 5조 2에 따르면 국회는 매 짝수월 1일에 임시국회를 개회하게 돼 있는데 6월에 열려야 할 국회가 벌써 일주일째 열리지 않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권이 좀 더 국가적인 대사를 진지하게 논의할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야가 아무리 공전을 거듭해도 현재 국회의장의 권한으로는 국회 소집권이나 회의 요구권 조차 없어 실제적인 조정이 안 된다"고 불편한 속내를 털어놨다.

김 의장은 비정규직법안 등 쟁점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것을 염두에 둔 듯 "(여야가) 절차적인 문제를 가지고 (국회 문을 열지도 않고) 시간을 끄는 것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국회뿐"이라면서 "국회의장이 (각 당의) 원내대표 눈치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것 또한 통탄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요즘 같은 상황에서 '도대체 의장이 뭐 하는 거냐'고 물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차라리 권한을 줬으면 좋겠다. 지금은 아무런 권한이 없다. 입으로만 야단칠 수밖에…"라고 씁쓸해했다.

김 의장의 이 같은 언급은 국회 운영을 위한 입법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마련해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야 원내지도부 간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또 4 · 29 재보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으로 야기된 지지율 추락으로 여권 구성원들 간의 내홍 사태까지 빚어져 6월 국회를 앞두고 범여권의 일사불란한 결집이 이뤄지지 못했음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은 민주당 등 야당이 장외투쟁을 선언한 데 대해서도 "과거에는 일이 터지면 야당이 먼저 '국회를 열자'고 요구했는데 요즘에는 국회가 열려도 걸핏하면 밖으로 나간다"며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장은 "국회가 열리는 것은 법 이전에 국민의 명령이라는 것을 여야 지도부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