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건넨 3억원이 "내가 지시해 받아서 빚 갚는 데 썼다"는 권양숙 여사의 진술과 달리 정 전 비서관의 차명계좌에 그대로 남아있는 사실을 검찰이 밝혀내면서 노 전 대통령 측의 '말 맞추기'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2006년 8월 현금 3억원을 박 회장으로부터 건네 받은 뒤 1억5000만원으로 나눠 두 개의 돈가방에 담아 청와대 관저에 전달했다는 진술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19일 밝혔다. 검찰은 당시 청와대 출입 내역과 돈가방을 관저에 전달했다는 운전기사에 대한 직접조사 등 광범위한 조사를 벌인 결과 돈이 청와대에 전달된 사실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당시 정 전 비서관은 박 회장과 그의 비서실장인 정승영 정산개발 대표를 서울역에서 만나 서울 L호텔로 이동한 후,이를 지인인 제3자의 차명계좌로 송금하도록 다른 운전기사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비서관은 이 계좌에 3억원 외에 박 회장,정대근 전 농협 회장,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이 아닌 제3자로부터 받은 수천만~수억원도 함께 예치해 둔 것으로 드러났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수사의 핵심은 왜 관련도 없는 권 여사가 이 돈을 받았다고 자처하고 나섰느냐는 것"이라며 향후 노 전 대통령 측의 거짓 주장과 '말 맞추기'를 뒤집을 증거확보에 주력할 것임을 시사했다. 검찰에 따르면 권 여사는 지난 9일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는 중 법원에 팩스로 의견서를 보내 3억원과 100만달러를 자신이 요구해 빌렸으며 모두 개인적 채무를 갚는 데 썼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권 여사는 또 지난 11일 부산지검의 소환 조사 때도 같은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앞서 정 전 비서관이 2007년 6월29일 박 회장으로부터 100만달러를 받아 대통령 관저에 전달하고 2006년 8월 현금 3억원,2004년 12월 백화점상품권 1억원어치를 받은 혐의를 밝혀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정 전 비서관이 정 전 농협 회장으로부터 3만달러 등을 받은 혐의를 적시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소명 부족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었다. 검찰은 3억원 부분 외에 추가로 확보된 수천만~수억원에 대한 혐의사실과 함께 권 여사 등의 거짓 진술 등에 대한 정황 증거를 추가해 정 전 비서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최근 박 회장이 "(2008년 3월 노 전 대통령에게서 받은 15억원 차용증은) 퇴임 전 8개월 사이 600만달러를 건넸는 데도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에 또 15억원을 요구해 차용증을 받아놓은 것"이라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진술은 "100만달러는 아내가 받았고 조카사위에게 건너간 500만달러는 최근에야 알았다"는 노 전 대통령의 진술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노 전 대통령의 주장을 뒤집고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할 유력한 증거로 보고 있다. 이 차용증은 작년 4~7월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 때 압수수색 과정에서 드러났으며 노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연이자) 7%를 주기로 하고 빌린 것으로 문제될 게 없다"고 해명했었다.

검찰은 또 건호씨가 500만달러 등을 엘리쉬&파트너스 등에 투자하면서 받은 이익배당금 내역과 환전 내역 등을 추가로 확인하기 위해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건호씨와 관련된 금융거래 내역과 외화 송금 내역 등을 건네받아 분석 중이다. 검찰은 여전히 건호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할 계획이 없다고 밝혀 수사의 초점은 노 전 대통령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편,노 전 대통령의 소환 일정에 대해 홍 기획관은 "(수사할 부분이) 상당히 방대하고 전직 대통령을 두 번 조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주변인 사실관계를 모두 정리해 확정한 뒤 소환 일정을 결정할 것"이라며 "소환 날짜가 확정되면 이틀 전에 이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