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미국의 입장에 변화가 감지돼 향후 논의 과정이 주목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일 영국 런던에서 가진 첫 정상회담에서 한 · 미 FTA 문제를 주요 이슈로 다뤘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전후 두 정상이 두 차례 전화통화를 했지만 FTA를 거론조차 안 했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회담 테이블에 올렸다는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두 정상이 거론한 수준은 '한 · 미 FTA의 진전을 위해 상호 협력해 나간다'는 정도다. 비준을 언제하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얘기는 오가지 않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한 · 미 FTA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고 최근의 미국 내 기류도 재협상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언급만으로도 기류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는 게 청와대의 시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양국 정상은 30분간의 짧은 회담에서 구체적이고 세세한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으나 미국은 우리가 얘기 안해도 (우리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며 "미국이 기존의 태도에서 한발짝 긍정적인 방향으로 옮겨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여러 여건상 획기적으로 진전된 입장을 보이기 힘든 상황에서 이 정도만으로도 FTA 비준을 위한 기반이 좀 더 다져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오바마 행정부가 한 · 미 FTA에 대해 진전된 자세를 보이는 이유는 여러 정치적,경제적 배경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움직임,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공조,아프가니스탄 재건사업 등 주요 현안을 놓고 한국과 긴밀한 협조가 절실한 시점에서 마냥 FTA 비준 작업을 미뤄 놓기에는 미국으로서도 부담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내에서의 여론이 오바마 행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점도 한몫했다. 한 · 미 FTA에 대해 "현 상태에서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힌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의 발언에 대해 미국 유력 일간지인 뉴욕타임스(NYT)는 사설을 통해 비판했다.

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모두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높여 왔다는 점에서도 미국 정부의 무조건적인 FTA 거부 반응은 이와 배치된다. 한국 · 유럽연합(EU) FTA가 속도를 내고 있는 것에 대한 위기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에서 유럽에 선수를 뺏기면 수출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은 정상회담에 앞서 한 · 미 FTA를 놓고 실무 차원의 의견 조율을 해왔으며 그 결과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 미 FTA 비준 문제가 우리 정부의 기대대로 속도감있게 진전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국 국회에서 비준이 여의치 않은 데다 미국 새 정부의 통상 정책 결정 라인의 진용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서다.

런던=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