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번복 가능성 등 불안정성은 여전히 문제.."경제냐 통제냐"

북한이 중동지역 최대 이동통신사인 이집트 오라스콤 텔레콤의 투자를 끌어들여 15일 '제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본격 개시한 것은 무엇보다 북한도 정보기술(IT) 시대 경제발전을 위한 필요성을 절감한 때문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 언론은 최근 정보기술 시대의 도래와 그에 대한 적응 필요성을 강조해왔으며, 북한의 조선체신회사 박명철 사장도 이날 개통식에서 "정보산업시대의 요구에 맞게 나라의 통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데서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이동통신 서비스가 북한과 오라스콤간 계약대로 계속 발전한다면 북한의 경제.사회 발전을 획기적으로 지원할 중요한 인프라가 구축되고, 또 대규모 외국인 투자의 안정적인 성공 모델로 국제사회에 알려져 외국인투자 유치에도 커다란 홍보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오라스콤이 이 사업에 3년간 투자키로 한 4억달러는 현재까지 개성공단 투자액에 버금간다.

남북관계의 경색 속에 개성공단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오라스콤의 북한내 이동통신 사업은 대북 투자의 불안한 이미지를 상쇄하고 남북경협과 관련 대남 압박 효과도 부수적으로 북한에 안겨줄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북한 당국 정책의 불안정성이다.

북한 당국은 체제유지와 경제발전이라는 2개의 목표가 상충할 때는 늘 체제유지를 우선해 왔다.

이동통신은 북한 경제발전에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내부 정보의 유출과 외부 정보의 유입으로 체제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실제로 태국의 록슬리 그룹과 공동으로 동아시아전화통신회사(NEAT&T)를 설립해 2002년 11월 평양시와 라선시에 휴대전화를 처음 보급한 뒤 각 도 소재지는 물론 군지역에서도 이동전화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가 2004년 6월 갑자기 정책을 바꿔 휴대폰 사용을 전면금지했다.

그해 4월 김정일 암살시도설도 제기됐던 평안북도 룡천역 대폭발 사건 후 이뤄진 이 조치는 도청이 어려운 휴대전화를 통해 북한 내외부의 정보가 유출입돼 체제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취해진 것으로 대북 소식통들은 전했었다.

이와 함께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로 북한 전반에 시장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급속한 '자본주의화'와 서방세계의 '사상문화 침투'를 방지하려는 의도도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고 일각에선 휴대전화가 폭발물의 기폭장치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제기됐었다.

이러한 금지에도 불구하고 일부 주민들이 중국에서 휴대전화를 사들여 중국과 접경지역에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등과도 직접 통화를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난해 말에는 북한 당국이 최신형 휴대전화 탐지기를 도입해 단속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이 이처럼 체제안전 '저해 요인'으로 여겨오던 휴대전화를 다시 개통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동통신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으나, 언제 다시 정책의 변덕을 부릴지 알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 미국의 북한 경제전문가인 마커스 놀랜드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오라스콤의 대북 통신사업 투자에 관한 글에서 이런 점을 지적하고 그러나 "이번엔 다를 수도 있다"며 이 사업이 지속될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북한에서도 이동통신에 대한 잠재시장이 커지고 있다며 북한 군과 정부, 노동당 기관들, 북한애 유엔기구 대표 등 외국인들, 남북경협 관계자들, 그리고 빈부격차 속에 나타난 신흥 부유층 등의 수요를 들었다.

그는 이와 함께 북한이 오라스콤의 북한내 이동통신 사업을 중단시킬 경우 오라스콤 건설이 중동 건설 시장에서 수천명의 북한 건설인력을 고용함으로써 북한 당국에 생기는 수입이 사라질 위험성, 이 이동통신 사업이 성공할 경우 남북 종단 파이프라인이나 철도 사업의 전망도 밝아지는 점 등을 북한이 이 사업을 지속토록 할 요인으로 꼽았다.

북한이 이번에 개통한 휴대전화 사용을 어느 계층, 어느 지역까지 허용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오라스콤은 일단 평양을 비롯해 3대 도시에서 10만 가입자를 1단계 목표로 시작한 뒤 사업성을 검토해 내년 이후 투자 확대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어서 오라스콤도 신중한 자세임을 보여주고 있다.

양운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에서도 이미 시장이 상당히 발달해 있고 경제활동이 많아지면서 휴대전화의 필요성이 그만큼 커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의 간부들이나 경제인들의 활동폭이 넓어지면서 이동통신 서비스 수요도 계속 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인터넷 보급은 극히 제한적이지만 인트라넷은 이미 활성화 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미 북한 내외부 정보의 유출입이 여러 수단을 통해 이뤄지는 상황에서 휴대전화로 인해 북한 당국 입장에서 혼란이 크게 가중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수영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휴대전화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북한에서도 외부세계와 마찬가지로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휴대전화를 개통한다 해도 돈있는 계층이나 간부들이 사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주민통제 차원의 난점보다는 휴대전화 사용의 이점이 더 많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에서는 아직 국경지역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사회주의 체제 고수를 위한 주민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면서 "휴대전화 개통을 북한의 대외 개방 의지와 연관시키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오라스콤 = 이집트의 재벌이다.

1950년 온시 사위리스가 창업한 후 현재 그의 세 아들이 각각 건설, 통신, 호텔과 부동산 개발 사업을 분담하고 있다.

특히 오라스콤 텔레콤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대의 휴대폰 사업자로 사업환경이 어려운 곳에 진출해 수입을 올리는 회사로 유명하다.

오라스콤은 지난해 7월 상원세멘트연합기업소의 지분 50%를 취득하면서 1억1천500만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가 전 세계 시멘트 계열사를 매각하면서 이 지분도 프랑스 시멘트 회사에 넘겼다.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기자 h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