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리더십은 '탈권위형 민주적 리더십'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해양수산부 장관이나 대통령후보 시절 노 당선자가 보여 왔던 리더십은 과거 3김(三金)의 권위적, 제왕적 리더십과 다르다. 리더에게 충성을 바치는 측근이나 계보는 찾아볼 수 없다. 자연 비선(秘線)보다는 공식라인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또 아랫사람에게 명령하는 것보다 대등한 위치에서 토론하는 것을 즐긴다. 원칙과 실용주의 =노 당선자는 사람을 쓸 때 걸아온 길과 노선을 중시한다. 국민의 정부 초기 인사에 대해 "과거 정권의 인물들을 많이 썼다"고 비판한 적도 있다. 그래서 노 당선자 주위엔 이해찬, 이상수, 천정배, 신계륜 의원 등 재야나 인권변호사 출신이 많다. 실무진 중에도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 포진하고 있다. 실용성도 주요 인사 기준이다. 대선기획단장에 동교동계로 기획력을 인정받고 있는 문희상 의원을 중용한 데서 이같은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향후 장관선임 등 국정운영을 위한 인사는 지금까지와 다를 것으로 보인다. 이기명 고문은 "정부부처 장관들은 가급적 정치인이 아닌 해당분야 전문가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탕평인사 =노 당선자 주위엔 특정지역 인맥을 찾기 힘들다. 의원과 실무진들의 출신지를 보면 수도권부터 영남, 호남, 충청, 강원에 이르기까지 전 지역에 두루 걸쳐 있다. 노 당선자는 공약이나 연설을 통해 "집권할 경우 지역간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정부투자기관 직원을 채용할 때 일정비율 이상 지방 출신자를 채용토록 하는 인재 지역할당제를 추진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해 왔다. 신뢰와 권한위임 =노 당선자는 일단 사람을 기용하면 전권을 위임하고 끝까지 쓰는 경우가 많다. 선대위 시절 실무급 인선 권한은 이상수 총무본부장에게 거의 주다시피 했다. 후보단일화 협상 과정에서도 이해찬 기획본부장과 신계륜 비서실장에게 기본 원칙만 제시한 뒤 모든 권한을 줬다. 이광재 안희정씨 등 의원시절부터 도왔던 인물들이 지금도 보좌하고 있는 것은 결정적인 실수를 하지 않는 한 끝까지 쓴다는 인사스타일을 반영한 것. 노 후보는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에서 "리더가 존재하는 이유는 조직 구성원들이 외부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익을 추구하거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했을 때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 면모도 있다. 탈권위주의 =해수부 장관시절 노 당선자는 지나가는 직원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또 실무를 담당한 사무관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토론을 했고, 부처간 조정이 필요할 때는 타 부처 과장들과 직접 대화에 나섰다. 후보시절에도 실무자들과 맞담배를 피우며 토론을 즐겼다. 자연 상명하복에 따른 경직성은 완화되고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져 불합리한 점들이 쉽게 지적.개선됐다는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시스템과 공식라인을 통한 의사결정 =후보시절 평상시 선거업무는 선대위 본부장단회의에서 논의해 결정됐다. 후보단일화 수용 등 굵직굵직한 결정들은 대부분 본부장단회의에서 나왔다. 이같은 스타일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에도 적용됐다. 과장급 정기인사에서 실.국장급 간부들에게 "당신들이 데려다쓰고 싶은 과장을 1,2,3순위로 3명씩 적어내라"고 지시하고 과장들에겐 "희망부서를 1,2,3순위로 써내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짜맞추기를 한 결과 누구도 원하지 않는 과장급 2명을 지방으로 발령냈다. 이와 함께 과장은 1년에 1명, 국장은 3년에 한명씩 강제퇴출시키는 인사를 단행하려 했으나 임기가 8개월로 끝나 실행하진 못했다. 노 당선자는 그러나 중대한 고비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결단을 관철시켜 왔다. 후보단일화 협상이 결렬위기를 맞았을 때는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통합21측의 여론조사 무효화 제안을 받아들였다.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부산출마를 결정한 것도 자신의 결단이 우선했다. 현장중시 ="현장에 가면 다 있다. 문제점도 해결책도 거기에 있다. 만나야 할 사람도, 알아야 할 사실도 그곳에 가면 다 있다. 현실을 모르는데 어떻게 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노 당선자는 문제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현장'이라 생각한다. 과거 인권변호사 시절엔 대우조선 분규를 해결하려다 구속까지 당했으며, 국민의 정부 들어서도 대우차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장을 찾았다가 계란세례를 받기도 했다. 윤기동 기자 yoonk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