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내 오신다더니 왜 이제야 오신거야요" 남측의 아버지 명해록씨(90)를 만난 준자(61).숙자(57)씨 자매는 그리움과 원망이 뒤섞인 눈물을 쏟아냈다. 한달 안에 돌아 오겠다며 아들(당시 2살)과 아내 김순님(83)씨를 데리고 남하했지만 결국 그 한 달이 50년 넘는 세월이 되어 버렸다. 명씨는 두 딸에 대한 미안함과 이번에 함께 금강산에 오지 못한 두딸의 어머니 김씨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헤어질 당시 각각 11살, 7살이었던 두 자매는 지금은 작고한 할아버지, 할머니수발 때문에 북측에 남았고, 명씨는 인민군의 강제 징집 때문에 잠시 피해 있다 온다고 떠난 길이었다. 그때는 피난민 누구나 그렇듯 1∼2달이면 돌아갈 줄로만 알았다. 노구를 이끌고 경남 창녕에서 꿈에도 그리던 두 딸을 만나러 온 아버지는 올망졸망한 아이가 아니라 회갑 노인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 딸들의 볼을 연방 쓰다듬으며 눈물만 흘릴 뿐 말을 잇지 못했다. "미안하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월남 이후 서울 신촌 근처에서 천막생활하며 지내다 한 때 경기도 김포에서 농사를 짓는가 하면 인천에서 장사다 양계장 운영이다 하며 어렵게 지내다 창녕에 정착한 명씨에게 부모 없이 온갖 고생을 겪을 딸들의 모습은 항상 가슴서린 애달픔 자체였다. 게다가 아내이자 두딸의 어머니인 남녘의 김씨가 한 가족당 1명이라는 규정에 묶여 꿈에도 잊지 못하던 두 딸의 얼굴을 못 보게 돼 그 미안함은 더한 듯 했다. 분단의 벽이 가져온 반세기 만의 상봉의 기쁨도 잠깐, 50여 년 간 꿈에도 그리던 두딸이 어머니를 끝내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이 자신의 죄라도 되는 것처럼 명씨는또 한 번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금강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