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의 "5.30 대선자금 담화"로 정국이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여권은 이날 담화를 계기로 정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대선자금 공개논란에서
벗어나 정치자금법 선거법 등 정치개혁 쪽으로 눈을 돌리겠다는 방침이나
현실은 예측불허의 난국으로 빠져들고 있는 실정이다.

야권은 즉각 전면 대여 투쟁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특히 김대통령에 대한 국회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추진하는 한편 김대통령
하야문제도 본격 거론할 태세다.

반면 여권은 이날 담화를 "마지노선"으로 간주, 더이상의 후퇴와 양보는
있을수 없다는 강경 입장을 정리해놓고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언제라도 책임질 일이 있으면 결코 회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심경을 피력한 이상의 조치는 나올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야권에 대해 지엽적 대응은 자제하고 곧 대대적인 후속 국면전환책을
마련해 대선자금 정국을 돌파하겠다는 것이 여권의 구상이다.

신한국당이 담화발표 직후 당무회의를 열어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
대회 일정 등 당내 정치일정을 확정하고 당체제를 경선체제로 전환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수 있다.

여권내에서도 김대통령의 이날 담화가 지금의 혼돈국면을 추스리기엔 미흡
하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지만 야권의 반발정도가 예상을 넘지는 않는다는
반응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대선자금문제는 12월 대선 때까지 끌고갈수 있는 최대 호재인데다 국민회의
와 자민련간 야권공조의 연결 고리이기도해 야권이 쉽게 놔버릴 까닭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여권이 이 정도로 대선자금문제를 매듭짓고 정치개혁에 나서겠다고 입장을
정리한 대목은 향후 정국전개 방향과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여권핵심부 관계자는 특히 "모든 정치자금의 입출금이 완전 실명으로 이뤄
지도록 하겠다는 김대통령의 언급은 "중대결심"의 단초로 앞으로 "정치자금
빅뱅"이라 불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선자금을 포함한 정치자금은 여야 정치권 모두의 문제인 만큼 돈많이 드는
정치관행을 쇄신하기 위한 "정치자금 실명제" 추진은 정치권 내부적으로
보면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발표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던져줄 것이라는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모든 선거관련 자금을 통장에 넣어놓고 써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경우
공.사조직 입출금 관련 자료가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여야 정치인 가릴
것없이 곤혹스런 입장에 몰리게될 것이라는 얘기다.

또 선거 때마다 "잉여자금"으로 치부해온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에도 제동을
걸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특히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야권지도부의 자금줄을 드러내놓게
하는 것이기도해 야권이 정치자금 실명제를 골간으로 하는 여권의 정치개혁안
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김대통령이 "국가적 과제인 정치개혁이 정치권의 근시안적 당리당략으로
좌초된다면 불가피하게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수 없다"고 밝힌 점도 앞으로
의 정국 전망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들은 김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정치개혁을 임기내 완전히 하고
넘어가겠다는 것으로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대통령직에 연연치 않고
초강수로 대응하겠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따라서 야권이 지금은 강경 대응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변모할 것이라는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대선자금문제가 김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일뿐 여권 대선예비주자들의 취약점
은 아닌 만큼 이 문제로 인한 정국혼란이 가중될수록 "3김 동반퇴진론"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야권이 의식하지 않을수 없다는 것도 이같은 판단의 배경에
깔려 있다.

그러나 여론이 구체적 대선자금 공개를 요구하는 쪽으로 흐르고 야권 대응도
극한투쟁으로 치달을 경우 김대통령의 "중대결심"과 맞물려 정치권은 누구도
예측할수 없는 대혼돈 국면에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김삼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