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등 32개 주요 공기업의 부채가 508조원(작년 말 기준)으로 1년 새 78조6000억원(18.3%) 급증했다. 부채비율로 따지면 평균 250.4%로 51.2%포인트 치솟은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 혁신을 주요 국정과제로 밀어붙였지만 기대와 달리 뒷걸음질 치고만 결과다.

늘어난 부채의 상당 부분이 무차별 사채 발행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더욱 걱정스럽다. 32개 공기업의 사채발행액은 304조4000억원으로 3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한 해 32조원의 천문학적 적자를 낸 한전의 사채 발행은 105조원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34조원) 도로공사(31조원)의 지난해 사채 발행액도 30조원을 웃돌았다.

공기업의 사채 남발은 ‘국가 우발채무’ 위험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심사라면 은행 대출도 만만찮을 부실 기업이 암묵적인 국가 보증을 통해 국채 수준의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채 34조원어치를 찍은 LH는 독자 신용등급보다 무려 9단계나 낮은 금리를 적용받았다. 한전 철도공사 석유공사 인천공항 등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11개 공기업이 저리 조달한 사채만 127조원이다.

이런 모기업과의 특혜 거래로 따박따박 이익을 챙겨가는 자회사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 자회사 73곳의 이익잉여금이 벌써 자본금의 4배를 웃돈다는 게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이다. 전기 검침, 요금청구서 송달 등의 단순 업무를 하는 한전 자회사 한전MCS는 모기업과의 독점용역 계약으로 600억원대의 이익잉여금을 쌓아둔 상태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 정부보다 공기업 개혁에 적극적이고 성과도 적잖은 게 사실이다. 개혁 착수 1년여 만에 1만여 명을 감축했고, 1조4000억원의 자산 매각도 해냈다. 또 과도한 복리후생 372건을 개선하고 예산 효율화로 경상비 1조5000억원을 절감했다. 하지만 나무보다 숲을 봐야 한다. 국가 부담을 키우면서 뒤로 실리를 챙기는 ‘나쁜 공생 구조’를 방치한다면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