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 전문성 인정하고
투자여력 늘리고 걸림돌 없애고
경제 자유도 확 높여야 가능

尹정부, 출발부터 역주행 조짐
공약 후퇴, 관치 유혹, 검찰 약진
민간주도 경제, 말뿐이었나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안현실 칼럼] 정말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경제' 해달라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경제.’ 윤석열 정부가 내건 경제 분야 국정목표다.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로 가자는 구호가 김영삼 정부 이후 줄기차게 나왔지만, 정부의 구조와 행태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정부가 끌고 갈 테니 민간은 뒤에서 밀거나 따라오라는 식이었다. 정부의 ‘경로 의존성’이 이렇게 견고하다.

“정부와 관료, 정책은 지적이고 공정하다.” 경제학자 존 매이너드 케인스의 ‘하비 로드의 전제’가 지금도 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부의 오판이 부른 ‘정부 실패’ 비용이 ‘시장 실패’를 능가하는 수많은 사례가 던져준 교훈이다. 윤석열 정부가 ‘공정’은 둘째치고 ‘지적 오만’부터 버릴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경제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식에서 민간이 정부를 압도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공약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청와대 수석 폐지였다. 이게 현실이 됐다면 정부 혁신의 일대 전환점이 왔을 것이다.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식과 권력이 비례하는 게 지식기반경제다. 지식의 이동에 따라 청와대 정부에서 민간으로 권력이 이동할 절호의 기회가 무산됐다. 민관합동위원회가 출범한들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곳곳에서 경제안보, 산업안보, 기술안보의 중요성과 정부 역할론을 말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한국은 강 대 강으로 맞서는 미국, 중국과 똑같은 패권 논리와 전략으로 대응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민간의 경쟁력에서 길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한국의 각료는 어디로 가든 상석에 앉아 ‘첫머리 말씀’으로 민간을 가르치려 든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경제라면 이런 시대착오적 장면부터 사라져야 한다. 과거 경제에 익숙한 관료 출신 각료들이 민간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배우는 자세로 돌아설 수 있을까.

또 하나의 의문은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민다는 경제 구호와 행동이 따로 놀 가능성이다. “투자해달라.” “일자리를 늘려달라.” 윤석열 정부에서도 이런 발언이 들려온다. 대통령이, 정부가 투자를 해달란다고, 일자리를 늘려달란다고 움직이는 경제는 ‘정상 경제’가 아니다. “기업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리면 대통령이 업어주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기업은 두고 보겠다”는 관치경제의 변종에 불과하다.

지금의 투자 환경은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의 분류를 원용하면 ‘리스크’, ‘모호성’을 뛰어넘는 ‘완전 불확실성’에 가깝다. 민간의 ‘야성적 충동’ 말고는 돌파할 다른 방도가 없다. 앞이 캄캄한 상황에서 ‘민간이 끄는 경제’로 가려면 민간이 투자 여력을 확보하도록 어떻게 도울지, 투자를 가로막는 걸림돌을 어떻게 제거할지가 ‘정부가 미는 경제’의 핵심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대부분이 말의 성찬으로 가득 차 있을 뿐, 완전 불확실성을 타개할 만한 대책이 안 보인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경제로 가려면 민간이 정부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야 한다. 한국 기업인은 정부나 정책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선진국 기업인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정부가 민간에 보복을 가하거나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수단이 너무 많다. 보이는 규제만이 아니다.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보기는 더 고약하다. 국세청 세무조사도 정부가 가진 비장의 카드다.

그뿐만이 아니다. 검찰·경찰이 경영판단 실패 등을 문제 삼아 배임죄로 걸고넘어지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대규모 투자나 신사업 도전은 전문 경영인으로는 안 되고 오너십을 필요로 한다지만, 배임죄는 오너도 피해갈 수 없는 함정이다. 실패가 다반사인 스타트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민간이 함부로 앞에서 끌다간 정부로부터 처벌받기 좋은 경제다. 수사를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는 게 이 나라다. 윤석열 정부에서 검찰 인사들의 약진은 그 자체로 민간의 경제 심리를 위축시키는 치명적인 불안 요인이다.

더도 말고 딱 세 가지다. ‘정부는 민간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배운다.’ ‘민간 투자의 여력을 늘리고 걸림돌을 제거한다.’ ‘민간의 경제 자유도를 높인다.’ 윤석열 정부가 이 원칙을 실행할 수 없다면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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